강미영 시인 / 빠가사리*
봄 끝에 바람이 끓어 넘치던 날 매운탕을 먹으러 팔당에 가요 숨 붙어 있던 꼬리가 아직 살아 파닥 거리네요
당신의 문장은 빠가빠가 울고 세상인심 빡빡하고 그래도, 평상에 앉아 매운탕을 먹으며 새의 꿈을 꾸기도 해요
도심 속을 벗어난 나무들 입은 귀에 불 붙었나봐요 우린 여기저기 앉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빠가는 빠가라고
빠가사리는 맛있고 한때 뜨거웠다고 영원한 친구, 멋진 빠가를 잠시 그리워하기도 했지요
뜯어먹는 책들이 바닥을 보일 때 쯤 우리는 통째로 냄비를 들고
꽃을 들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듯
빠가라는 불온한 이름으로 아직 또 은유의 시인을 꿈꾸며 읽다만 책장을 넘기며 한 세상을 뒤로 하고
아프지 않은 적이 없는 물고기로 울어요
강미영 시인 / 봄이라는데 문상 오라 하네
분홍 손톱이 비처럼 휘날리는 날이고 시간 폴폴 날리는 검정 스웨터를 꺼내 입는 날이야 잠시 손톱을 바라보거나 창밖의 날리는 꽃잎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중얼거려
어디에서 불어오는 것일까 분홍과 검정은 너무 어울려서 슬프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꽃잎처럼 비처럼 잘 어울려서 슬프다고
가방 따윈 동행하지 않아 시간은 언제나 종말 직전에 둥글어지고 안락해 지니까 다행이야 마침표는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
모래를 닮은 눈물들이 건너편 아파트 너머 사막을 건너가고 있네 복된 죽음이었다고 해, 하나님이 초대장을 보내왔다고 그리곤 펜을 가만히 내려놓았다고 해 양복 입은 남자들은 흰 벽에 기대 구름을 만들어
장례식장은 왜 지하에만 있는 것일까
계절은 조금씩 이동하고 분홍은 하염없이 내려 우리들 가슴속에 쌓이는데 잘 어울리는 검정색들이 안녕! 오래 배웅하는 꽃잎의 손톱
『시인동네 4월호』, 시인동네, 2018, pp.98~99.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성만 시인 / 인형을 뽑는다 외 1편 (0) | 2021.10.09 |
---|---|
조경선 시인 / 개가 물어뜯은 시집 외 2편 (0) | 2021.10.09 |
홍진기 시인 / 저녁 산책 외 5편 (0) | 2021.10.08 |
강미영 시인 / 시인 (0) | 2021.10.08 |
황형철 시인 / 나의 여름은 외 7편 (0) | 2021.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