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만 시인 / 인형을 뽑는다
손잡이 당길 때마다 스르륵~ 뱀 기어가는 소리 들으며 낚시를 드리우는 이유는 특별히 할 일이 없기 때문 일몰 후 떼 지어 출몰하는 학생들 지저귀는 것 같은 소리로 몰려다니는 외국인들 노랑머리 소년이 귀고리 소녀의 허리 아래 슬쩍 손 얹는 것을 훔쳐보다가 저 빵빵한 엉덩이엔 무엇이 들어있을까 상상하는 것이 나의 취미 싸가지 없는 것들, 중얼거리는 것이 나의 버릇 계산대도 없는 매장의 사장이 누구인지 우리 동네에 이런 산뜻한 가게가 여럿 있어 뿌듯하다는 이야기며 최근 끔찍하게 살해된 고양이의 아버지가 계부라는 소문에 대해 묻고 싶지만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나의 일 어쩌다 운 좋게 뽑은 인형이 내게 아빠 아빠 부르는 소리 차르륵 찰칵 지우는 것이 밤의 일
시집 『케이블카 타고 달이 지나간다』(여우난골, 2021) 중에서
고성만 시인 / 비꽃
보고 싶어 먹고 싶어 잠자고 싶어 달싹거리는 입들 빗소리의 음악에 맞추어 까딱거리는 귀들
물방울 가득 우산을 털면서 진한 화장 짧은 치마의 소녀 머리 노랗게 물들인 소년이 쭈뼛쭈뼛 들어온다 버스정류장 벽에 바짝 붙어 소녀의 입을 맞추는 소년
희번덕 눈길 던지자 잠시 불시착했던 지구를 버리고 팔랑팔랑 우주로 떠나가는 나비 한 쌍
우의 속까지 몽땅 젖어버린 저녁 파장 무렵
시집 『케이블카 타고 달이 지나간다』(여우난골, 202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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