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규정 시인 / 채석강 스캔들
책은 옆구리로 읽는 것이다
등뼈 부러지는 소리로 허리를 펴도 펼 소나무는 어기적어기적 한 뿌리는 이미 바다 쪽으로 던진 채석강을 찾아 가리, 길을 잡아주던 길잡이보다 길잡이를 끝낸 곳에서 허리 굽힌 동네 머슴이 되리니
엎드려 일만 하고서도 담배 한 개비면 충분한, 뽐뽐뽐 통통배 연기배 맞춰 해거름에 들어가면 고봉으로 밥상 차려놓고 부엌문 뒤로 살짝 숨은 손, 그 손은 달랑 한 장의 거친 겉장 같지만 더듬어 읽어갈수록 따뜻한 속살의 책을 온밤을 채워 거푸거푸 읽었듯이
나 그렇게 채석강에 가면 옆구리로 읽어낸 한 사람이 억 만권 장서 속에 비릿하게 묻혀 있으리
서규정 시인 / 낙화
만개한 벚꽃 한 송이를 오 분만 바라보다 죽어도 헛것을 산 것은 아니라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모심이 있었고
추억과 미래라는 느낌 사이 어느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는 그 이유 하나로도 너무 가뿐한
서규정 시인 / 줄기가 나를 세운다
꼭 한놈만 죽이고 싶은 가을이 가네 딱 한 번만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게 십자성 별빛따라 한 놈의 흉곽을 확 열어 제끼고 사형수가 되었으면 하네 재판관이 왜 그랬냐 물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장기 기증을 권유하는 덜 떨어진 녀석이 간, 심장, 눈, 그 중에 하나만 빼놓고 가라 하면 쓸개나 떼주고 가리 T.V에 자주 등장하는 인기승려가 지은 죄 씻고 가라 하면 검은 장갑이나 벗어 주고 가리 마지막으로 남길 말 없냐 물으면 고개를 살레살레
한없이 열어 본 해바라기 빈 가슴
*(직녀에게) *빛남출판사 서규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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