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춘 시인 / 별과 어둠 사이
어둠이 어둠인 것은 별이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별이 별인 것은 아스라한 어둠 장막이 은은히 감싸기 때문이다 별도 아니고 어둠도 아닌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칠흑 속에서도 별을 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둠 헤치고 천천히 걸어 숲으로 바다로 길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별과 어둠 사이 잃어버린 샛길을 더듬 더듬거리며 그대에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반딧불이가 되어 깜박깜박 기억상실증처럼 절망 속에 오롯한 새 길을 내기 때문이다
나병춘 시인 / 우산
山을 뒤집어쓰면 우산이 된다 山자를 뒤집어 보라 뒤집어 보는 데 시의 묘미가 있고 삶의 맛이 있다 울적한 날마다 나는 산에 가리라 우산도 없이
나병춘 시인 / 내가 시골 군수라면
내가 군수라면 마을 이름을 이렇게 지을란다 도토리 상수리 마을 너구리 오소리 마을
거리거리 골목골목마다 떡갈나무 오리나무 숲길 만들어 다람쥐 어치 청솔모 뛰어댕기며 숨바꼭질하게 하리라
사과 복숭아 개살구 고욤나무를 심어 과일 꽃향기로 울긋불긋 물들이리라 고사리 너구리 고마리 쇠박새 거리 멧돼지 은빛여우도 아~ 우! 울어대는 야생이 살아 넘치는 산골 군수가 되리라
내가 시골 군수라면 숲 속에 사당을 지어 하늘천따지 가마솥에 누릉지 노래하며 숲 속 동물들과 하루 종일 놀게 하리라
나병춘 시인 / 슬
누가 슬다 갔을까 이슬 머금은 잎사귀 뒤 아스라한 벼랑에 채 마치지도 못한 슬다란 동사,
동사는 마침표가 없다 누가 감히 '슬다'를 훼방 놓았을까 저 물푸레나무 열 시 방향 작은 가지에서 곤줄박이 하나가 부리에 소음 한 알 슬고 있다
'슬다'와 '슬프다' 사이 스카이블루 낮달이 물푸레로 춤추고 있다
저 낮달은 우주 모퉁이에 누가 슬었을까 슬슬 걷고 있는 이와 저 무릎 슬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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