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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경숙 시인 / 봄이 운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17.

황경숙 시인 / 봄이 운다

 

 

4월 곰배령에 폭설이 내린다

수줍고 담담한 신부들 같다

 

무거운 배낭에 털 신발을 신고

마음속 진동을 옮겨 놓은 눈의 두터운 갈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흰 계단을 밟아 오르며

 

엉거주춤 봄이라고 우기는데 바람이 마른 풀을 스친다

 

마침내 거대한 백색 바리케이드가 사라지면

흩어지는 입김 사이로 희미한 연둣빛 비린내에

누구라도 눈물 날 텐데

 

당신은 환절기 알레르기처럼 자주 잊으며 운다

 

山은 오르고 嶺은 넘어야 하는 것을

어쩌다 마음의 발목마저 삐었는지

 

오르지 않고 겨우 넘어서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놓아버린 것들을

자신에게 물어보았듯 내게도 물어본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봄이면 울던 곰배령은 있다

 

 


 

황경숙 시인

전남 여수에서 출생. 2009년 《애지》를 통해 등단. 시집 『그린란드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