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숙 시인 / 봄이 운다
4월 곰배령에 폭설이 내린다 수줍고 담담한 신부들 같다
무거운 배낭에 털 신발을 신고 마음속 진동을 옮겨 놓은 눈의 두터운 갈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흰 계단을 밟아 오르며
엉거주춤 봄이라고 우기는데 바람이 마른 풀을 스친다
마침내 거대한 백색 바리케이드가 사라지면 흩어지는 입김 사이로 희미한 연둣빛 비린내에 누구라도 눈물 날 텐데
당신은 환절기 알레르기처럼 자주 잊으며 운다
山은 오르고 嶺은 넘어야 하는 것을 어쩌다 마음의 발목마저 삐었는지
오르지 않고 겨우 넘어서 당신은 이미 알고 있다 그 누구의 슬픔도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놓아버린 것들을 자신에게 물어보았듯 내게도 물어본 적이 있다
누구에게나 봄이면 울던 곰배령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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