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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현상연 시인 / 장항아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18.

현상연 시인 / 장항아리

 

 

맨드라미 제 몸 불사르던 날

아버지,

부푼 배 끌어안고 질긴 발효 꿈꾼다

 

폭염 탓인지 곰팡이 번식 탓인지간장은 부패되어 시궁창 냄새 진동한다

우환이 담을 넘고

집안에 수심이 납작 엎드려 있다

목까지 차오른 근심은

간장을 범인으로 몰아세우고

어머니,

간장 항아리 산산이 깨버린다

깨진 조각에서 흘러내린 숯 물

가슴에 고인다

 

흩어진 어둠이 제 그늘을 긁어모으고

그늘 안쪽은 점점 넓어졌다

근심이 안방에 모이던 날

아버지 사진 속으로 들어가고

허기진 그리움만 가난으로 웃고 있다

 

----현상연 시집 {가마우지 달빛을 낚다}(근간)에서

 

 


 

 

현상연 시인 / 도시의 인어

 

 

폐타이어를 입고

물고기처럼 헤엄쳐가는 사내

 

폐타이어 속 숨은 다리가

화엄의 길 따라 헤엄치고

불규칙하게 흘러나오는 노래는 장바닥을 적신다

낡은 노래방 기계에 의지해 밥을 먹는 남자,

 

검은 타이어가 출렁일 때마다

파도를 타고 앞으로 나간다

사내는 파랑의 한 가운데 서기도 하며

꼬리가 해안 끝에 닿을 무렵,

동정의 시선이 쏟아지고

하루의 생계는 살이 오른다

 

밀고 가는 행상이 길어질수록

차오르는 플라스틱 바구니,

애처롭게 흐르는 가락에 행인의 발걸음 멈추고

던져지는 동전 한 닢 적선이 끝나자

일주문을 나서듯

봉고차를 타고 사라지는 도시의 인어

 

 


 

현상연 시인

한국 방송 통신대 국어 국문학과 졸업. 2017년 《애지》봄호 신인 문학상 수상 등단. 애지 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