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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선정 시인 / 우리 어머니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18.

문선정 시인 / 우리 어머니

 

 

연속극 봐야 하는데 레미콘 못 봤냐?

TV 보는 재미에 푹 빠지신, 우리 어머니

KFC광고를 보시다가

막내가 저기 KT에서 햄버거랑 통닭을 사왔는데 맛없더라 먹어 봤냐 하신다

 

말없이 웃던 내가 문득 KT를 생각하다

저는 KTX를 한 번도 못 타봤어요, 타보셨어요?

개인택시를 한 번도 안 타봤다고? 야야- 신시가지 나가면 흔한 게 개인택시다

 

아, 방 안 가득 휘저어 놓는 깨꽃 같은 웃음들이여!

 

언젠가 후세인이 잡혔데요 했더니

후시딘 연고를 내어 주시며 어디 다쳤냐 하시던, 그 날부터였나

귓속을 다니는 협궤 열차에 조금씩조금씩 가는귀 실어 보내시던, 우리 어머니

아랫목에 앉아 마음 편히 테레비를 보기 위해 달려온 시간이 하마 50년은 걸렸을 거다

연예인 수첩이라는 별명답게 연속극 시간표는 죄다 머릿속에 꼼꼼 심어 놓았다는, 똑똑이 우리 어머니

레미콘에 연속극 한 편 싣고 태우고 오시는 사이

가는귀 다시 오시었는지

틀니 뺀 합죽한 입을 오물거리며 기쁘시다가 슬프시다가 욕하시다가

무릎 덮은 이불 펄럭거리며

레미콘, 레미콘, 레미콘 어딨냐?

 

 


 

 

문선정 시인 / 사소한 웃음

 

 

한동안 소식 끊긴 사람에게 카카오톡이 왔다

한겨울 느닷없이,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냐 묻는다

언젠가 마트에 가면 아이스크림은 꼭 사세요

하던 말이 생각났다

 

대답도 하기 전에

바닷가 풍경 사진 한 장이 날아왔다

물결치는 바다를 배달했으니

무엇을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속이 깊은 바다와

걸음이 예쁜 구름이 하늘을 지나는 풍경을 전송하고

지구에서 가장 푸르게 출렁이는 것을 주었으니

그대는 내게 무엇을 더 주실 수 있는 지요? 물었다

 

빙수가 먹고 싶은데 어떡하느냐 딴소리를 한다

기온이 뚝 떨어져 바닷물이 꽁꽁 얼면

짭쪼롬하고 달큼한 빙수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가 킥킥 웃는다

나도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동그랗게 웃었다

 

달빛으로 푸른빛이 도는 이마가 시릴 때까지

우리는 킥킥거리다 헤어졌다

무거운 두뇌가 갑자기 가벼워졌다

 

 


 

문선정 시인

경기 구리 출생. 2014년 《시에》로 등단. (사)한국작가회의회원. <다층시문학회> <숨,詩작가들>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