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휘 시인 / 제목; 아니, 不
가슴 맞대고 빗금을 그어 불사르는 성냥 한 개피 구겨진 삼류잡지 얼룩진 기사에 불을 지피고 부적절, 부도덕, 불륜, 부정부패, 아니不자에 불을 지핀다 소음속 공허의 바람에 불씨를 지피다가도 파도가 버거워 발소리를 멈추고 붉은 성냥 한 개피 아니不자에 빗금을 그어 어둠을 태우는 불씨 하나 아니不자 잔물결 성냥갑에 갇혀 눕는다
김병휘 시인 / 껌
들녘에 날아드는 나는 파랑새다 아버지는 읍내 병원에 가시고 이슬이 마르지 않는 이른 아침 돌아오는 길에 싸리꽃 몇 송이 꺾어온다 질그릇 항아리에 싸리꽃을 꽂아두고 상경하는 고속버스, 하루 종일 담근 김치냄새 고춧가루에 손이 아리고 양파에 눈시리고 버스 안에서 아린 냄새 지우며 씹는 껌 처방전을 들여다보며 아차! 아차! 씹는 껌 차창에 내 눈망울을 올려놓고 갯벌 같은 터미널에는 비라도 쏟아질 것 같은데. 다시 씹는 아버지의 파랑새 아버지의 삼강오륜을 씹고 아버지의 검버섯을 씹고 아버지의 다랑논을 씹고 큰 소리로 짹짹거리며 풋나락 하얀 뜨물을 빤다 매운 김치 드시고 계실 아버지 단물 빠진 아버지의 껌이 조용하다
시문학 5월호
김병휘 시인 / 상사초
기다리다 기다리다 빨갛게 타버린 꽃 오솔길 옆 창가에 꽃이 되어 피어도 그대 어깨 잎이 되어도 그대를 만날 수 없네 만날 수 없네 그리움은 몇 겁의 겨울로 살아야 다정히 함께 웃음 피는 꽃잎이 될까
기다리다 기다리다 노랗게 녹아내린 잎 도솔천에 쓸려가 구름 되어 흘러도 그대 머릿결 곁에 바람으로 날려도 그대를 만날 수 없네 만날 수 없네 빗물은 얼마나 가슴을 적셔야 햇살 속에 웃음짓는 꽃잎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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