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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병휘 시인 / 제목; 아니, 不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19.

김병휘 시인 / 제목; 아니, 不

 

 

가슴 맞대고 빗금을 그어 불사르는

성냥 한 개피

구겨진 삼류잡지 얼룩진 기사에 불을 지피고

부적절, 부도덕, 불륜, 부정부패, 아니不자에 불을 지핀다

소음속 공허의 바람에 불씨를 지피다가도

파도가 버거워 발소리를 멈추고

붉은 성냥 한 개피

아니不자에 빗금을 그어

어둠을 태우는 불씨 하나

아니不자 잔물결

성냥갑에 갇혀 눕는다

 

 


 

 

김병휘 시인 / 껌

 

 

들녘에 날아드는 나는 파랑새다

아버지는 읍내 병원에 가시고

이슬이 마르지 않는 이른 아침

돌아오는 길에 싸리꽃 몇 송이 꺾어온다

질그릇 항아리에 싸리꽃을 꽂아두고

상경하는 고속버스,

하루 종일 담근 김치냄새

고춧가루에 손이 아리고 양파에 눈시리고

버스 안에서 아린 냄새 지우며 씹는 껌

처방전을 들여다보며

아차! 아차! 씹는 껌

차창에 내 눈망울을 올려놓고

갯벌 같은 터미널에는

비라도 쏟아질 것 같은데.

다시 씹는 아버지의 파랑새

아버지의 삼강오륜을 씹고 아버지의 검버섯을 씹고

아버지의 다랑논을 씹고

큰 소리로 짹짹거리며 풋나락 하얀 뜨물을 빤다

매운 김치 드시고 계실 아버지

단물 빠진 아버지의 껌이 조용하다

 

시문학 5월호

 

 


 

 

김병휘 시인 / 상사초

 

 

기다리다 기다리다 빨갛게 타버린 꽃

오솔길 옆 창가에 꽃이 되어 피어도

그대 어깨 잎이 되어도

그대를 만날 수 없네 만날 수 없네

그리움은 몇 겁의 겨울로 살아야

다정히 함께 웃음 피는 꽃잎이 될까

 

기다리다 기다리다 노랗게 녹아내린 잎

도솔천에 쓸려가 구름 되어 흘러도

그대 머릿결 곁에 바람으로 날려도

그대를 만날 수 없네 만날 수 없네

빗물은 얼마나 가슴을 적셔야

햇살 속에 웃음짓는 꽃잎이 될까

 

 


 

김병휘 시인

200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과여행』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