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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지우 시인 / 해바라기 씨앗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1.

황지우 시인 / 해바라기 씨앗

 

 

홍대 앞에서 거의 구걸하다시피 택시를 탔다. “인사동!” 따블로 주기로 했다. 기분이 좋아진 택시 기사가 요즘 좀체 않는 정치 이야기를 했다. 그의 어투에 억눌러진 사투리가 있었기 때문에 나도 전라도 사람이라고 했다. 안심은 나를 더 피곤하게 했고 여전히 좀 창피스러웠다. 늦겨울의 짧은해가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미루나무 숲에 동그란 구멍을 내놓았다. 잠시 후 그 맑은 구멍이(나는 그것이 작은 손거울 같다고 생각했는데) 영안실로 들어갔고, 그리고 쨍그렁 하고 거울이 깨어져버렸다. 그 순간 온 세상 사방데가 정전되듯 갑자기 깜깜해졌다. 당황한 택시기사의 손이 바르르 떨리면서 실내등을 켰다. 침묵. 나는6시 반에 내 개인전 오픈이 있으니 돌아서라도 빨리 좀 가자고 했다. 침묵. 나는 아내가 담배 피우는 대신 먹으라고 준 안주용 해바라기 씨앗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씹어 먹었다. 차가 인사동 입구 구 민정당사 앞에 섰다. 지갑을 꺼내고 운전수를 보았는데. 아니. 이럴 수가! 오류동이 차고인 광명택시, 서울 노 6112의 이현섭씨는 온데간데없고, 식육점의 붉은 형광빛 같은 실내등만 켜져 있었다. 나는 그것이 피라고 생각했고, 소스라치게 놀라 호주머니에서 해바라기 씨앗들을 꺼내어 운전석에 뿌리고 도망쳐나왔다. 화랑 학고재에 15분 늦게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이토 나리히코 교수가 웃으면서 나왔다.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전시는 다 끝났으며 사람들도 다돌아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몹시 실망했지만 이토 상을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이모집으로 갔다. 모듬전이나 홍어찜을 잘하는 그 한정식집은, 그런데 이상하게도, 좀체 나오지 않았고 우리는 미로 같은 골목만을 한참 헤메었다. 러시아 공관 뒤편짝까지 갔다가 복사꽃 가득 핀 신궁여관을 돌아나오자 바로 도쿄 신주쿠 고르덴 가가 나왔다. 60년대 동경대 좌파들이 숨어들어와 테이블 하나만 놓고 술집들을 하고 있는 골든 街를 3년전 이토씨가 안내한 적이 있는데 거시서 이토 씨가 이모집을 찾아내는 것이 아닌가. 내가 놀란 것은 초행인 그가 이모집을 찾았다는 데 있지 않고 이 인사동 골목이 서울이 아니라 사실은 동경 신주쿠라고 그가 말한 데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를 뒤에 두고 그가 이모집 문을 열었다. 대문이 삐익 소리를 내는 것은 예나 같았다. 그러나 그 밥집은 어두운 지하 계단을 한참 내려가도록 되어 있었고, 이토 씨는 라이터를 켜서 내 발걸음을 도와주었다. 그가 작년에 보스니아 내전에 평화 사절로 다녀온 이야기를 했으나 지하의 공명 때문에 말이 울려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몇몇 앉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는 그들이 죽은 사람들이 아닐까. 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나는 검은 늑대의 얼굴을 한 신상이 창을 들고 지키고 있는 이집트 묘실에 들어 온 기분이었다. 그렇게 친절하고 신사적이었던 이토 나리히코의 표정이 갑자기 표변하여 굳어 있었고, 그는 어떤 의식을 집전하듯, 나를 작은 별실로 안내했다. 다다미가 깔려 있는 그 방의 정면에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어서 실내는 어두웠지만 형체는 알아볼 수 있었다. 이토는 잠깐 전화하고 오겠다며 나갔다. 방 가운데 사각형의 검은 탁자가 있고, 거기에는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그 서류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는 이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 호주머니에는 해바라기 씨앗이 없었다

 

 


 

 

황지우 시인 /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 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 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 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집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황지우 시인 / 신 벗고 들어가는 그 곳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독신녀,

그곳에 가보면 틀림없이 베란다에

그녀의 신이 단정하게 놓여 있다

한강에 뛰어든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시멘트 바닥이든 시커먼 물이든

왜 사람들은 뛰어들기 전에

자신이 신었던 것을 가지런하게 놓고 갈까?

댓돌 위에 신발을 짝 맞게 정돈하고 방에 들어가,

임산부도 아이 낳으러 들어가기 전에

신발을 정돈하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뛰어내린 곳에 있는 신발은

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영원히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그 방향 이쪽에 그녀가 기른 熱帶魚들이

수족관에서 물거품을 뻐끔거리듯

한번의 삶이 있을 따름이다

 

돌아보라, 얼마나 많은 잘못 든 길들이 있었는가

가서는 안 되었던 곳,

가고 싶었지만 끝내 들지 못했던 곳들;

말을 듣지 않는, 혼자 사는 애인 집 앞에서 서성이다

침침한 밤길을 돌아오던 날들처럼

헛된 것만을 밟은 신발을 벗고

돌아보면,생을'쇼부'칠수 있는 기회는 꼭 이번만은 아니다

 

 


 

 

황지우 시인 / 두고 온 것들

 

 

반갑게 악수하고 마주앉은 자의 이름이 안 떠올라

건성으로 아는 체하며, 미안할까봐, 대충대충 화답하는 동안

나는 기실 그 빈말들한테 미안해,

창문을 좀 열어두려고 일어난다.

 

신이문역으로 전철이 들어오고,

그도 눈치챘으리라,

 

또다시 핸드폰이 울리고, 그가 돌아간 뒤

방금 들은 식당이름도 돌아서면 까먹는데

나에게서 지워진 사람들, 주소도 안 떠오르는 거리들, 약속 장소와 날짜들,

부끄러워해야 할 것들, 지켰어야만 했던 것들과 갚아야 할 것들;

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세상에다가 그냥 두고 왔을꼬!

 

좀더 곁에 있어줬어야 할 사람,

이별을 깨끗하게 못해준 사람,

아니라고 하지만 뭔가 기대를 했을 사람을

그냥 두고 온

거기, 訃告도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제주 風蘭 한점 배달시키랴?

 

 


 

 

황지우 시인 / 제주 바닷가를 걸어간 발자국

 

 

요즘엔 신문을 봐도 무슨 천문학자나 고고학자의

새로운 발견 같은, 그런 기사만 눈여겨보게 되대이.

 

南제주 대정 바닷가에서 5만년 전 舊石器人 발자국을

발견했다는 일면 톱기사를 식탁에서 읽다가

김치 썰던 주방용 가위로 스크랩 해두었어;

그때 한 인간이 빠르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더라고,

어디 먹을 거 없나...... 하는 그런 필사적인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돌칼 들고 5만년 전의 바람 속으로 들어가는데

내가 맡은 바다냄새를 킁킁거리며 그 근처에서

풀을 뜯던 말들이 고개를 돌려 일제히 이쪽을 넘보는 거야

5만년 후의, 유리 깔린 내 식탁으을......

5만년 뒤 헌 쓰리빠 같은 발자국 화석을 눌러놓은 몸이,

그 한 몸이 다음 몸을 무수히 복제하여 나에 이른

이 냄새, 수저를 들어올리는 손의 이 공기에 대한 느낌;

아, 그 맣은 새들이 내 발자국 주위로 성가시게 내려앉고

아, 살아야 해, 살아야 해!하면서

실은 나는 얼마나 많이 이미 살었등고!

 

게으르게 밥알 씹다가 뒤집어본 스크랩 뒷면,

전두환씨 아들의 괴자금 170억 사건;

나는 식어버린 된장국물을 후루룩 마셨어.

 

 


 

황지우(黃芝雨) 시인

1952년 전남 해남군 출생. 본명은 황재우黃在祐. 1972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서 문학활동을 시작. 1973년 유신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입영.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연혁(沿革)〉 입선, 〈문학과 지성〉에 수필 〈대답없는 날들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등단. 1981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제적되어 서강대학교 대학원으로 옮겨 1985년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1991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 김수영문학상, 백석문학상 외에도 현대문학상(1991), 소월시문학상(1993), 대산문학상(1999) 등을 수상하였고 2006년 옥관문화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