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맹 시인 / 푸른 염소를 부릅니다―讚
푸른 염소가 하루 종일 씹어도 씹히지 않는 회화나무 한 그루 아래 묶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갓 구운 빵의 시간과 검은 진흙의 공간을 잘게 분절시키고, 죽은 사람들은 사흘 동안 슬픔으로 동글동글 비벼져 푸른 염소의 울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회화나무 가지에는 붉은 물고기들이 자라며 바람이 불 때마다 붉은 구리 종소리를 냅니다. 푸른 염소가무릎을 꿇고 회화나무 언덕 아래 초록의 강을 바라봅니다. 슬픔이 깊어지면 푸른 염소의 수염이 강을 붉게 적시기도 합니다.회화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금빛 새들의 노래 소리를 풀어주기도 하지만 푸른 염소는 평생을 씹어도 씹히지 않는 회화나무 한 그루 아래 묶여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 푸른 염소를 부릅니다. 내 푸른 염소가 무엇인지도 모르나 그저 묶여있는 이 노래가 푸른 염소를 讚하자 하니, 내 讚하며 푸른 염소를 부릅니다.
노태맹 시인 / 碧巖錄을 읽다 2
1. 어떤 스님이 雲門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와 조사를 초월하는 말입니까?” “도너츠!” ―허허, 이런. 雲門의 하늘 한가운데가 열렸다.
2. 늦은 저녁 김밥 天國 떡라면에 젓가락질하며 유선 TV에 뚫어져라 시선을 박고 있는 나는 이를테면 연옥 앞에 와 대기하고 있는 것 아닐까, 분명 이곳은 아닌 곳을 향해 있는,
창 밖 고양이 한 마리 어둔 인도 위 웅크리고 앉아 라면 국물 마시는 나를 응시하고 있다. 여기로 뛰어들고 싶은 것일까, 창 이쪽도 펄펄 끓어넘치기 직전의 국솥 같은 것이거늘.
“어떤 것이 인민과 悲劇을 초월하는 말입니까?” “옜다, 도너츠!”
3. 산허리에 얹힌 구름 그림자 여름숲에 엉겨 걸리다. 그림자만 버려두고 회색 뭉게구름 가 버린 후 여름숲 한 귀퉁이 해질녘까지 축축하다. 그림자 없는 구름은 끝내 비 되지 못할 테고
숲은 어두운 빗소리 계곡물 소리만 얻는다. 허니 이제 요량해 보라, 雲門 스님의 허기를 이제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노태맹 시인 / 숨은 달
사랑이 영원할 것처럼 사랑하기. 그러나 언젠가 그 붉은 사랑도 꽃처럼 지는 것임을 알아야 영원은 영원으로서 효과를 나타낸다. 달이 밤 구름의 효과이듯 사랑도 흐릿한 시간의 효과인 것을.
노태맹 시인 / 벽암록(碧巖錄)을 읽다 17
1. 담배를 피우다 남보라빛 두 눈에 긴 노랑 혓바닥을 가진 새끼손톱만한 꽃을 발견하다. 사무실에 들어가 인터넷으로 한 시간 만에 그것이 달개비꽃임을 찾다. 바로 그 이름을 불러보기 위해 느티나무 그 아래 달려가보니 누군가 화단 잡초를 깨끗이 베어놓았다. 달개비꽃은 없고, 이름 몰랐던 꽃에 대한 기억만 남다. 해도 사진 한 장 못 남긴 걸 아쉬워할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누가 느티나무 아래로 후라이드 치킨과 콜라를 들고 오고 있다.
2. 무엇이 선인가 물었다. 선이 선이라 대답하였다.
달이 둥글기 전에는 어떠한가 물었다. 붉은 꽃을 세 개 네 개 삼켜버렸다고 하였다.
다시 온전히 둥근 다음에는 어떠한가 물었다. 푸른 칼을 일곱 개 여덟 개 토하였다 하였다.
어리석은 놈 (대강 상상하지 마.) 달 떠내려간다, 저 강물이나 잡아라.
3. 노사정이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대타협에 협의했습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이날 오후 6시께 정부 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4인 대표자회의를 열어 핵심 쟁점인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에 대한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일반해고는 저성과자나 근무 불량자를 해고하는 것으로, 현행 근로기준법은 아직 도입하지 않았습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완화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사규를 도입할 때 근로자의 동의를 받도록 한 법규를 완화하는 것입니다.(MBN 뉴스, 2015.9.14)
성서 공단 네거리 환한 길 위 마이크를 잡고 선전전을 하던 김 위원장이 갑자기 수천의 달개비꽃들로 날아가버렸다. 붉은 백일홍꽃 다시 푸른빛으로 돌아가는 계절이긴 했다. 어디서 다시 그를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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