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 시인 / 무명시인
도종환의 [어떤마을]을 가르치는데 이 시인을 아느냐 한다 안다고 했더니 거짓말 말라고 한다 선생님께서 이렇게 유명한 시인을 알 턱이 없다 한다 시인의 싸인 적힌 책 증거로 제출하자 내내 흉내내서 쓴 게 틀림 없다고 우긴다 즉석 글씨체를 홱 만들더니 "보세요 똑같죠"하며 함께 찍은 사진 있으면 당장 내놓으란다 없다고 했더니 그러니까 거짓말이란다 청소년 문학 워크샵 때 정지용 시비 앞에서 150 명이 함께 찍은 사진으론 도저히 얼굴 식별이 안 돼서 포기하고 진짜 친구 사이라고만 했더니 즈이 아버지가 서태지라 한다 최불암이 할아버지고 갈갈이가 친오빠라고 한다 선생님 시는 평생 교과서에 실리지 않을 거란다
강병철- 젊은 시인을 노려보며
만날 때마다 훅훅 달아오른다 일단 '툭’ 건드리면 조각조각 무너지는 칼날 감성 탓이다 모가지 조르는 아름다운 그들 이젠 원초적 질투를 넘어 증오와 적개심으로 낑낑 앓는 것이다 글을 쓴지 30년 솔직히 나는 닳고 닳았다 너무 오래 썼다 언어를 수제비처럼 뚝뚝 떼어내지만 알몸의 황홀함이 없다 축시, 추모시, 행사용 빵틀시, 데모할 때 선동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면서 걸리는 단어들 재탕 삼탕 우려먹기도 했다 그나마 지천명의 술꾼 저력으로 가장 시인다운 태를 내려 하지만 전보다 빨리 취한다, 아주 친한 벗들 이름조차 깜빡하는 건방증도 도래했다 그래도 의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머리 칭칭 동여맨 채 숨어서 글을 쓰는 빡센 사내로 남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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