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시인 / 명화 한 점
투명한 유리잔에 말린 감국 서너 송이 넣고 팔팔 끓여 뜸들인 물을 붓는다 따끈한 물에 기분이 좋아진 감국 살며시 옷고름 푼다
드디어 꽃잎 사이로 좁다란 오솔길 열리고 갈래머리 소녀 깡충깡충 뛰어간다 경쾌한 뜀박질 소리에 영사재 솟을대문 스르르 열리고 옥색 도포자락 사이로 흘러나온 할아버지 사서삼경 청아하기도 하다
신식 불파마 머리를 옥양목수건으로 가린 어머니 모락모락 김나는 고구마 함지박 가득 담아 부엌에서 나오신다
“에미야 해 지기 전에 국화를 따거라 내일 아침 서리 내리것다”
뒤란의 국화꽃 일일이 따서 대청마루에 늘어 말려 꽃베개 해주시던 어머니 우리 육 남매 꿈길마저 행복했던 내 마음속 환한 벽에 걸어둔 가장 따뜻한 그림
오랠수록 더 환해지고 또렷해져서 외롭고 서러울 때마다 꺼내보는 명화 중의 명화 한 점.
하영 시인 / 이상한 어른들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을 후루룩 마시면서 그 국물 참 시원하구나
뜨거운 찜질방에 비스듬히 누워 숨을 몰아쉬며 땀을 흘리면서도 아이구 참 시원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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