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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하 시인 / 사과가 가득한 방
입속을 들여다보는 의사는 좁쌀만 한 결절에 즐거워요 성대결절입니다
어쩐지 나는 로맨틱한 마음이 들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의사가 입을 열어 다섯 번째 계절과 숨은 계절을 보여 준다
결절된 성대 부근을 보면 상처가 보여 주는 용례는 자주 갈라진다고 해요 입속에 두 개의 사과가 있다고 의사는 정정해요 빈방에 통증이 숨어 있다고 또 정정해요
두 계절의 성분은 무엇입니까
의사는 자기 가슴을 또 한 번 열어 돌아오는 계절과 돌아오지 않는 계절을 보여 준다
당신이 만든 계절과 신이 당신을 만든 계절 중에 어느 계절을 믿는지 묻는다
저는 제 몸의 온도와 속도만 믿어요 통증은 하나의 계시라서 누구나 믿을 수 있고 자란다는 특징이 있어요
입속을 들여다보는 의사는 빈방을 보고 즐거워해요 방에 피 묻은 붕대가 가득하다고 말해요 사과가 가득하다고 정정을 해요
나는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아요
방은 이제 무엇으로 가득한가요
이담하 시인 / 말의 침묵
말하고 듣고 생각하는 일, 3초면 가능하죠
3초 지나면 머쓱, 마치 빨간색 볼펜 같죠 각자의 말에는 색깔이 있다는 말 들어보셨죠 캄캄한 귀를 고집하신다고요
3초의 침묵, 세상에서 가장 긴 대답일 수도 있어서 그땐 입을 열고 혀의 색깔을 확인하는 거죠
침묵은 잉크가 떨어진 일일 수도 있겠지만 유언이 흐릿한 이유도 마지막 잉크를 짜내어 쓰기 때문에 모두 자기 색깔이라고 우기는 거죠
묵비권이 철저히 개인용 대화라면 똑딱똑딱 펜을 열고 닫듯 추궁은 공용어일까요
작은따옴표 속에 있던 말을 큰따옴표로 옮겨 와도 갇혀 있는 것은 마찬가지죠 하고 싶은 말 입속에서 몇 바퀴를 도는 동안 중화되지 않죠 점줄로 되어 있는 대화체 침묵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아서…… 툭툭 던져 놓고 무신경했던…… 그냥 놔두어도 언젠가는 발아될 말의 씨앗이죠 입속에 쌓이거나 목구멍에 걸릴 때가 있는 말의 씨앗
봄은 언제 오는 거죠
이담하 시인 / 선물에 대한 오해
자정 무렵 선물을 넣고 가는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 몰라야 되는 사람 기뻐할 아이를 잘 알아야겠지만 정작 그 아이를 모르는 사람
문밖에 걸려 있는 양말 한 짝 선물은 발가락 수를 가리지 않고 양말 속으로 들어간다
착한 아이만 선물을 받는다는 거짓말
나는 나쁜 아이였는데 선물을 받았고 양말을 뒤지는 사람이 아닌 그 양말에 선물을 넣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쁜 아이도 선물을 받는다는 오해 하나가 풀리는 일
빨간 모자가 돌아다니는 집집 조용히 방문을 닫는 집집
누구에게 무엇이라도 받을 것 같고 줄 것 같은 그 무렵 착한 사람만 선물을 받는다면
한꺼번에 웃는 사람 한꺼번에 우는 사람
시집 <다음 달부터 웃을 수 있어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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