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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동남 시인 / 동백꽃 지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30.

박동남 시인 / 동백꽃 지다

 

 

봄이 오기 전에 남해에서 소식이 왔다

그녀가 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설렌다

 

만발, 푸름 위에 불꽃이다

 

그녀

순결한 자태, 빛나는 웃음에 반해 무시로 해안을 찾는다

파도는 달려와 아름답다 아름답다 같은 말을 하다 가고

고단함을 내려놓은 목선도 출항하는 배들도 연신 감탄사

 

갈매기 떼 어깨위에 노을 싣고 내려앉으면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도 부디 안녕하기를

 

맑게 씻은 얼굴로 떠오르는

태양의 눈부신 고백에도 불구하고

아아, 스스로 목을 꺾었다 목을 베였다 이견이 분분

모래위에 수급이 뒹굴고 인생무상 그림자 드리운다

수평선이 밝아오는 이른 아침에

 

 


 

 

박동남 시인 / 찔레꽃

 

 

순네야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더라

뒷문 열고 개구멍을 빠져나가 들키지 마라

서방의 주먹이 방문을 부수는구나

하물며 짐승들도 그 길은 안단다

술이 아니라 아랑주를 먹어도 그렇지

자식 못낳는 게 어디 네 탓 이더냐

 

녹음방초 길을 달려 재 넘어 밭에 누구요

휘파람 새 노래하는 오동나무 그늘에서

손등으로 눈시울 훔치더라 훔치더라

눈썹달이 뜨도록 거기 있었더냐

 

찔레 순처럼 쌉쌀한 누이야

허구한 날 물 긷고 다발나무 이고 다닐 때

사람들은 계모 밑에 사는 걸로 착각 했지만

억척인 것을 억척인 것을

 

십년만에 가진 아기 남의 씨라 구박 받더니

서방을 꼭 빼닮아 닮아

술과 살던 서방 죽고 억척이 발동

장터 어물전 손님들과 시름하여

외동딸 의학박사 만들고 그제야 웃더라.

찔레꽃처럼 웃더라

 

 


 

 

박동남 시인 / 고난 뒤에는 소망이 있다

 

 

넓은 면적을 차지한 갈참나무

잎사귀 사이사이로 내려오는 햇살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귓속말을 주고받는 나뭇잎 그림자들

 

나무는 숲을 보호하지만, 숲은 나무를 보호하지 않는다

 

나무, 나무들의 아우성

폭풍의 입김이 상수리나무 팔을 찢고 잣나무 허리를 부러뜨리고

아카시아 나무를 뿌리째 뽑는다.

뽑혀나간 나무는 비바람 속도에 누워 운다

바람은 길도 없는 곳으로 흔적을 남긴다

 

떡갈나무는 몸을 낮춰 태풍이 몰고 오는 비바람을 벗어나지만

불면의 밤을 새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

졸음을 떨치려고 몸을 털어낸다

 

시련은 예고 없다

해마다 겪은 그들

옹이진 나무마다 힘겹게 허리를 편다

 

단풍잎 물웅덩이에 구름이 간다

새들이 난다

새들의 날개 뒤에 하늘이 높고 푸르다

노을도 몆 번쯤 담아 내리라

 

해 종일 하늘을 가슴에 품은 나무들

하늘을 향해 잎을 흔들어 끊임없이 요구한다

새순이 더 길어진다

나무는 모두 하늘에 소망을 두고 그 도움으로 산다.

 

 


 

박동남 시인

2008년 《다시 올 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볼트와 너트』가 있음. 현재 〈우리시〉 회원. 국제 팬클럽 회원. 주요작품: <동백꽃지다><빈집에 관한 보고서><양변기 편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