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미화 시인 / 물의 미사
그 여름 나는 신의 정원에서 살았네
찾아오던 새가, 저녁에 죽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네
저녁마다 물의 미사가 이루어지고
구름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몸을 바꾸자 새는 사라지고 흰 책이 펼쳐졌네
신이 꾸는 꿈은 바람의 기슭에 닿지 않았네
새 발자국이 메타세쿼이아 가지에 끝없이 찍혀 얼음의 기록들이 일렁였네
석미화 시인 / 흰 강
언젠가 강바닥을 퍼내자 슬리퍼가 딸려 나왔다 왜 혼자 거기서 죽었지, 말들이 떠돌았다
아이들은 가끔 고열을 앓았다 흙마당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당고모는 물고 있던 칼을 강 그림자 바깥으로 던졌다 백동전을 주으러 가는 새벽
강은 매일 허옇게 변해갔다 한 번씩 서로의 몸을 엮어 물살을 거슬러 올랐다
우리는 영구차 먼지 속에서 미루나무처럼 크고 싶었다
ㅡ시집 『당신은 망을 보고 나는 청수박을 먹는다』(시인수첩,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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