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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석미화 시인 / 물의 미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30.

석미화 시인 / 물의 미사

 

 

그 여름 나는 신의 정원에서 살았네

 

찾아오던 새가, 저녁에 죽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네

 

저녁마다 물의 미사가 이루어지고

 

구름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몸을 바꾸자

새는 사라지고 흰 책이 펼쳐졌네

 

신이 꾸는 꿈은 바람의 기슭에 닿지 않았네

 

새 발자국이 메타세쿼이아 가지에 끝없이 찍혀

얼음의 기록들이 일렁였네

 

 


 

 

석미화 시인 / 흰 강

 

 

언젠가 강바닥을 퍼내자 슬리퍼가 딸려 나왔다 왜 혼자 거기서 죽었지, 말들이 떠돌았다

 

아이들은 가끔 고열을 앓았다 흙마당에서 굿판이 벌어졌다 당고모는 물고 있던 칼을 강 그림자 바깥으로 던졌다 백동전을 주으러 가는 새벽

 

강은 매일 허옇게 변해갔다 한 번씩 서로의 몸을 엮어 물살을 거슬러 올랐다

 

우리는 영구차 먼지 속에서 미루나무처럼 크고 싶었다

 

ㅡ시집 『당신은 망을 보고 나는 청수박을 먹는다』(시인수첩, 2021)

 

 


 

석미화 시인

1969년 경북 성주에서 출생. 2010년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졸업. 201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4년《시인수첩》 신인상 당선. 시집<당신은 망을 보고 나는 청수박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