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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지요 시인 / 물고기를 잡는 여자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1.

김지요 시인 / 물고기를 잡는 여자

 

 

계림의 이강에 가면

고기 잡는 가마우지가 있다

허름한 뗏목을 타고

강물을 거슬러 가다 가마우지를 날려 보낸다

오래된 습성으로 물고기를 물어오는 가마우지

주인은 목의 중간을 묶어 두고

가마우지가 넘기지 못한 물고기를 끄집어낸다.

 

긴 강물의 끝에 어머니가 보인다

오래전 저녁마다 돌아앉아

무언가를 토해내던 검은 가마우지

삼켜지지 않는 무엇을

아무도 모르게 두 손바닥에 받아내고

아침이면 다시 먹이를 나르던,

어머니가 차려 준 아침 밥상에는

물새의 울음이 들리곤 했다

강물에 어둠이 내린다

가마우지의 발가락이 시리다

 

 


 

 

김지요 시인 / 해피에게

 

 

식은 밥덩이에도 꼬리를 치고

내리는 눈에도 꼬리를 쳤다

비 오는 날 치명적인 냄새를 풍기거나

털갈이를 할라치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여서

눈칫밥만 늘어가던 개

 

마실갔던 친구 집 앞에서

무심한 눈을 끔벅이며

두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해피

기다리고 꼬리치는 것이

일상이자 숙제가 되어가던 개

긴 여름날 마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다 입에 물려주면

숨겨놓은 신공을 보여주듯

막대를 굴려가며 아이스크림을 먹어치우던

 

그날이 그날인 날들을 잘 굴려가며

녹여먹다, 문득 해피가 생각난다

왜 한 번도 해피가 행복한지에 대해 궁금하지 않았을까

 

나의 털갈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줄줄 하루는 흘러내리고

실없이 개미떼를 좇아다니느라

넋을 잃은 해피처럼

해는 저물고, 묻고 싶은 한 마디

해피

행복했었니?

 

 


 

 

김지요 시인 / 육교 가드너

 

 

사거리 육교 아래

이정표처럼 서있는 남자

세상이 톱니바퀴처럼 잘 물려 돌아갈 때

나사 풀린 표정으로 삐딱하게,

뒤춤에 한 손을 넣은 채 천연덕스러운 그의 무표정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공유하는 즐거움도 잠시

어느 순간 멍한 얼굴로 그를 지나친다

그의 관조적인 눈빛이

거슬리기 시작한 건 의외였다

왜 저러고 있는 거야

한 마디씩 돌을 던지는 사람들

오른 손은 왜 엉덩이에 얹혀있는 걸까

쳇바퀴를 잘도 굴리는 우리를 비웃는 건 아닐까

 

얄팍한 가면을 가진 자들이

사거리를 지나는 동안

무엇에도 개의치 않고

본분인 듯 가장 지극한 일인 듯

구경꾼이 되어가는 남자

육교가 먼저 있었던 것인지

 

그가 있던 자리에 육교가 생긴 것인지,

남자가 보이지 않는 하루

풍경은 헛바퀴를 돈다

누군가 장난스럽게 명명한

그의 호칭 육교 가드너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박혀있는

후줄근하고 헐렁한 나사못 하나

 

 


 

 

김지요 시인 / 붉은 꽈리의 방을 지나

 

 

내 노래 들어볼래

 

혀끝으로 지그시 누르고

눈을 감으면 어둑어둑 걸어나오지

 

그걸 기다린다고 해야 하나

보여줄 수 없는 물오리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물들어가는 거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붉어지기를 기다렸어

무언가를 붙들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시간

 

허공에 그어지는 빗줄기

빗줄기가 그리는 둥근 혼잣말을 받아적었지

파문처럼 번지는 노래

 

환기되지 않은 슬픔이 주렁주렁 열린 방들

온통 빨간약을 바른 종아리를 한들거리며

아프지 않은 척 기다리고 있을게

 

아, 노래를 멈추고 싶어

발을 헛디뎌 주저앉았던 층계참의

플랫, 플랫을 조심해

 

창궐한 명아주 덤불 사이

밀교(密敎)처럼 익어가는

그 방의 빗장을

 

니가 열어줄래?

 

 


 

김지요 시인

전남 보성 출생. 2008년 《애지》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붉은 꽈리의 방』(지혜사랑, 2016)가 있음. 제5회 애지문학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