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민 시인 / 종이 공장
천사는 종이처럼 얇습니다 어디에나 있어야 하니까 파기할 천사를 백 장 썰면
한 사람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눈이 쌓이듯
아름답군
이 말이 인간의 신호가 되었습니다 종이가 비계처럼 아름다워진다는 의미입니다
눈을 맞으며 걸으면 몸으로 뱀이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몸 안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중이라면 뱀이 쌓인 곳에서 뽀드득 소리가 난다면
눈 위로 뱀이 지나간 자리가 길고 좁게 빛나는 내 영혼이라면
연애의 그런 점이 좋습니다 비계를 먹는 소리
신호를 받아 지나간 세계 말고는 아무런 세계가 없는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눈송이들이 갑자기 우리를 향해 방향을 바꿀 때
공장이 아름답군
눈송이는 눈송이에게로 몰려갑니다 눈송이가 눈송이와 부딪히지 않으며 눈송이에게로 몰려가는 모습이 눈의 풍경을 만듭니다
출렁이는 비계와 같았습니다
내가 뱀처럼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여성민 시인 / 접은 곳
그늘을 보면 누군가 한 번 접었다는 생각이 든다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잃어버린 삶이 이쪽에 와 닿을 때 빛과 어둠 사이 오늘과 내일 사이
수긍할 수 없는 것을 수긍해야 하는 날 접을 곳이 많았다 접은 곳을 문지르면 모서리가 빛났다 창문과 절벽은 무엇이 더 깊은가
어떤 대답은 갑자기 사라졌다 모서리가 사라지듯 그런 날은 거리에 전단지가 수북했다 수도자의 발자국처럼 바람에 떠밀리며 가는
죽은 자들의 창문이거나 한 장의 절벽
버릴 수 없는 고통의 한 쪽을 가장 잘 접은 곳에서 귀는 생긴다
이해 할 수 없는 시간을 몇 번 접으면 꽃이 되듯
종이처럼 눌린 분노를 접고 접으면 아름다운 거리가 된다
어떤 창문은 천 년 동안 절벽을 누른 것이다 창을 깨면 새들이 쏟아진다 죽은 새를 접으면 고딕의 지붕 접은 곳을 펴면 수도자의 기도는 다른 영역으로 들어간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리는 깨끗했다 기도하기 위해 손을 모으면 지붕의 모서리가 보였다 지붕에 지붕을 업으면 죽은 새 손을 찢다 자꾸 죽은 새
여성민 시인 / 스미스 부인
스미스처럼 스미스 부인은 웨슨과도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 자신은 스미스와 웨슨의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했고 스미스는 긍정했다 스미스가 웨슨의 방에서 나온 뒤 스미스 부인이 웨슨의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스미스 부인은 스미스와 웨슨의 탄알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건 스미스의 은어였다 스미스처럼 스미스 부인은 인디언 마을의 붉은 흙을 좋아했다 사과를 깎으며 머리 가죽이 벗겨진 빨간 인디언들의 이름으로 긴 노래를 지어 불렀다 붉은 흙에 피가 떨어지면 검은 흙이 되었다 기병대는 인디언들의 눈이라고 불렀다 코코넛 나무 위로 올라간 저격병들은 인디언들의 눈을 과녁으로 사용하였다 평화란 장전에서 격발까지의 시간이라네 스미스의 말을 스미스 부인은 자주 인용했다 톱니가 있는 군용 나이프로 인디언들의 눈을 찌르며 스미스처럼 사과를 파먹거나 자신의 입에서 검은 과녁들이 자라고 있다는 스미스의 농담을 웃으며 따라 했다 스미스 부인은 모든 일을 스미스처럼 했다 스미스 부인이 스미스처럼 하지 않은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스미스는 신을 믿었다 불빛들이 반짝인 후 스미스와 웨슨의 방에서는 서로 다른 종류의 탄피들이 발견되었다 스미스 부인은 그 일에 대해 끝까지 함구했다 스미스는 어느 평화로운 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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