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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경미 시인 / 꽃 지는 날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5.

김경미 시인 / 꽃 지는 날엔

 

 

꽃 피는 날엔

누구와도 다투지 않기로 한다

 

꽃 지는 날엔

어떤 일도 후회하지 않기로 한다

 

연두색 잎들 초록색으로 바뀔 땐

낡은 구두로

바다 위 돛단 배와 물고기를 만든다

 

어디선가 기차 지나가는 소리 들리면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고

 

저녁 종소리 들릴 듯 말 듯 기억이

자꾸 고개를 돌리면

내 잘못을 용서한다

 

혀로 망친 날은 용서하지 않는다

일주일이나 보름동안 별빛 보며

세시간 이상씩 걸어도 부족하다

 

아무 것도 믿지 않아서 출구가 없었던 날들

 

이십대가 다 가도록 아름답지 못했고

아름답기도 전에 이십대가 다 갔으니

 

서른과 마흔을 보낼수록 점점 더 산뜻해져야한다

 

그런 봄날의 믿음

차츰과 주춤의 간격들

 

가방 무거운 날엔 입술도 무거워야 한다

종일 아무와도 말하지 않는다

 

눈물을 잊으면 부족한 게 점점 많아져

얼굴이 곤두서네

 

비 오는 날에도

비 오지 않는 날에도

아무와도 다투지 않기로 하지만

 

꽃 피는 날에도

꽃 지는 날에도

후회가 많아서 운다

 

세상 살면서 가장 쓸모있는 건

뉘우침 뿐이라고

 

꽃 피는 날에도 꽃 지는 날에도

 

월간 『현대문학』 2021년 7월호 발표

 

 


 

 

김경미 시인 / 나의 제 1 외국어

 

 

가을비다

 

대화가 가능할 때까지

 

반복 학습중이다

 

계간 『시에』 2021년 가을호 발표

 

 


 

김경미(金京眉) 시인

1959년 서울에서 출생. 한양대학교 사학과 졸업.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비망록〉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실천문학사,1989), 『이기적인 슬픔들을 위하여』(창작과비평, 1995), 『쉬잇,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 2001)『고통을 달래는 순서』(창비, 2008) 등과 사진 에세이집 『바다 내게로 오다』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