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오 시인 / 목조 호텔
내 안에 방이 앉아 있다 방이 나를 어지른다
바다가 바다 밖으로 헤엄친다
입 밖으로 장난감이 쏟아진다 원반이 수평선으로 날아간다
젠가의 신을 본 적 있다 지금 그가 호텔의 방들을 넣었다 뺐다 하고 있다
신이 졌다 파도가 호텔을 무너뜨렸다
제일 아래 블록 로비가 나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동안
셔츠가 셔츠에 걸려 넘어진다 원반 위에서 원반이 흘러내린다 구름과 쇼핑백이 나란히 걸려 있다
로비가 방 옆에 앉는다 로비와 방이 서로 낯을 가려서
식도를 걸어 잠근다
기도 대신 나무를 더 깎으세요 신은 그러면서 눈을 감고 손을 모았다 사라진 호텔 앞에서
나는 그를 이길 생각 없다 그의 실수를 내가 삼켰다
뱃속에서 방이 기어 다닌다
방이 일어난다 어지럽다
계간 『포지션』 2021년 봄호 발표
김선오 시인 / 진화
눈 속에 자꾸 어둠이 쌓인다 테트리스처럼
컵을 쌓는다 컵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모든 컵이 콜라로 가득하다
아니다 컵에 숲의 밤을 구현한 그래픽이 담긴다 냉장고가 터질 것 같다
집의 야생이 감소한다
정전에 컵은 빛난다 컵이 자발적으로 콜라를 쏟는다 콜라 속에서 월식이 일어난다
컵을 그리면 컵은 비워진다 종이가 어둠에 젖는다
(검은 물감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그림 그리지 마세요)
다시
컵의 재질은 절반이 유리 절반이 플라스틱이다
컵은 피라미드와 무관하다 컵은 지구의 입장과 무관하다 중국집과도 마찬가지
어느 날 컵 속에 불이 났다
부엌에 넘쳐흐르는 얼음 가스레인지 눈알들
계간 『다시 개벽』 2021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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