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암 시인 / 절
지난 여름 보경사 산문 앞 육백 살 회화나무 한 분 땅바닥에 온전히 넘어지셨다
일평생, 제 몫을 다하고 허공에서 바닥까지 큰절 한 번 올리고 누운 저 몸, 마지막 몸뚱이로 쓴 경전(經典)
나도 지금 절 올리고 있다
이종암 시인 / 수평선 다방
하늘이 물고 바다가 매달려 있는 강구항
수평선 거기에다 몇 평 세를 얻어 애인과 다방을 차리자
전축 볼륨을 끝까지 높여서 배호의 「파도」를 옆자리 옆자리로 펼쳐놓고 출렁이며 흔들리면서 그렇게
이종암 시인 / 저, 쉼표들 -내 동생'
네 음성을 본다 들려온다 남해 다도해에서 너는 가고 남은 우리에게 미처 다하지 못한 말, 둥둥 떠다니는 이 문장들을 여기서 읽는다 너의 저 작은 섬들
떠도는 저 쉼표들 어쩌나 , , , , , ,
이종암 시인 / 내관(內觀)
밖으로 내뻗던 총총한 눈길 다 거두고 제자리에서 겨우 숨만 내쉬며 제 몸 들여다본다
內觀이다 겨울나무는
이제 깊은 묵묵부답으로 한 철을 간다 소리 없는 둥근 흔적을 쌓는
이종암 시인 / 적멸의 저쪽
곰소항 어깨 위로 스러져 가는 햇살의 안간힘 모두 내소사 대웅보전 앞문에 핀 꽃살문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녹슬지도 않는 저 장엄이 사는 문살에 피어난 사방연속 꽃무늬가 부처를 부른다 반쯤 열린 법당 안 후광을 환하게 짐 지고 있는 부처도 꽃무늬 속으로 들어서려 목을 쭉- 빼는가 법당 처마 끝 바람 한 자락 물고 있던 물고기 한 마리 고갤 돌린다
해 지나간 곳 노을 지워진 적멸의 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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