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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종암 시인 / 절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27.

이종암 시인 / 절

 

 

지난 여름 보경사 산문 앞 육백 살 회화나무 한 분 땅바닥에 온전히 넘어지셨다

 

일평생, 제 몫을 다하고 허공에서 바닥까지 큰절 한 번 올리고 누운 저 몸, 마지막 몸뚱이로 쓴 경전(經典)

 

나도 지금 절 올리고 있다

 

 


 

 

이종암 시인 / 수평선 다방

 

 

하늘이 물고

바다가 매달려 있는

강구항

 

수평선 거기에다

몇 평 세를 얻어

애인과 다방을 차리자

 

전축 볼륨을 끝까지 높여서

배호의 「파도」를

옆자리 옆자리로 펼쳐놓고

출렁이며 흔들리면서

그렇게

 

 


 

 

이종암 시인 / 저, 쉼표들

-내 동생'

 

 

네 음성을 본다 들려온다 남해 다도해에서 너는 가고 남은 우리에게 미처 다하지 못한 말, 둥둥 떠다니는 이 문장들을 여기서 읽는다 너의 저 작은 섬들

 

 떠도는

 저 쉼표들 어쩌나

 , , , , , ,

 

 


 

 

이종암 시인 / 내관(內觀)

 

 

밖으로 내뻗던 총총한 눈길 다 거두고

제자리에서 겨우

숨만 내쉬며 제 몸 들여다본다

 

內觀이다 겨울나무는

 

이제 깊은 묵묵부답으로

한 철을 간다

소리 없는 둥근 흔적을 쌓는

 

 


 

 

이종암 시인 / 적멸의 저쪽

 

 

 곰소항 어깨 위로 스러져 가는 햇살의 안간힘 모두 내소사 대웅보전 앞문에 핀 꽃살문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녹슬지도 않는 저 장엄이 사는 문살에 피어난 사방연속 꽃무늬가 부처를 부른다 반쯤 열린 법당 안 후광을 환하게 짐 지고 있는 부처도 꽃무늬 속으로 들어서려 목을 쭉- 빼는가 법당 처마 끝 바람 한 자락 물고 있던 물고기 한 마리 고갤 돌린다

 

  해 지나간 곳

  노을 지워진 적멸의 저쪽

 

 


 

이종암 시인

1965년 경북 청도에서 출생, 영남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1990년 천마문화상 문학평론부문 당선, 1993년 계간<사람의 문학>과 《포항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물이 살다 간 자리』(모아드림, 2000)를 비롯하여『저, 쉼표들』(문학과경계, 2003)이 있음. 현재 시동인 '푸른시' 회원으로 활동 中. <포항문학> 편집위원, 포항예술문화연구소(Art Forum) 회원, 민족문학작가회의 경북지회 사무국장, 현재 포항 대동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