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호 시인 / 새우의 방
불빛이 환한 창이랄까 방이랄까 저 좁은 곳 누군가 맨홀을 걷어차며 던진 돌들이 쌓여 바닥이 되고 담장이 되었다 한밤중의 좁은 방 한 칸으로 집약되는 세계 언제부턴가 습관적으로 걷는다리는 접고 헤엄다리로 오르내린다 오른쪽 더듬이만 까딱이는 도대체 식사시간을 알 수 없는 주섬주섬의 식습관 유목생활의 너른 들판인 냉장고 속을 추리다보면 운 좋은 날엔 고기 한 조각도 씹을 수 있다 방향이 불분명한 물소리를 타고 올라가 허공을 기웃거려도 보지만 불빛은 가짜였고 폭죽은 더 어두운 땅으로 떨어졌다 여기서 우주란 없다 잔발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동안 발의 개수는 무수해졌고 발을 쓸 수 있는 방은 더 좁아졌다 인맥이라는 광맥은 처음부터 분포도가 없다 알고 지낸 사람들은 눈동자로만 요약되어 창을 가득 메우고 너머의 광막한 어둠은 그 눈동자들의 괄약근처럼 조몰락거린다 뒷주머니까지 까뒤집어 보여준 훤한 장면들 새우의 방식으로 등을 휘어본다 혼자만의 시간이 흐르는 단단한 집 뚜껑이 열리면 더 깊은 어둠으로 튀어오를 수 있는,
천수호 시인 / 권태
곰삭다, 라는 말에 들어앉아 있는 저 곰 한 마리를 쫓아낼 순 없나 일어서지도 걷지도 않고 웅크린 채 기어가는 건지 걸어가는 건지 알 수 없는 이 족속의 행동에 총구를 겨눈다 총을 모르는 이놈은 한 손으로 슬쩍 밀어낼 뿐 도대체 긴장하지 않는다 발 앞에 떨어진 불발탄을 내려다보며 울지도 놀라지도 않는다 속이 다 삭아서 뼈도 없는, 큰 입만 한 번 벌렸다 닫는 저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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