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고은산 시인 / 조응(照應)의 푸른 방향성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19.

고은산 시인 / 조응(照應)의 푸른 방향성

 

 

 이파리들의 청잣빛 다툼을 관망하는 참새 한 마리, 혀의 길이만큼 짧게 재잘재잘 청명을 씹고 있다 청명의 강도가 클 때 지상에 피는 꽃잎 같은 소동의 계절은 잽싸게 익어간다

 

 먼 남녘 밭이랑 사이 부지런히 흐르는 젖산의 농축이 새싹 같다 새싹의 노동력을 찬양하는 인류들의 혓바닥은 매끈하다

 

 해가 남쪽으로 쏟아 붓는 일조량이 최대치로 흐르며 햇볕 조각들, 작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한 중년의 집 토방 위, 만선처럼 쌓인다 서쪽으로 하늘의 기우는 각도가 움직인다

 

 그 중년은 지금까지, 일과 끝에선 신발 밑창의 하루 마모만큼 지폐를 세어가며 마당 바지랑대 높이 정도로 일당을 받곤 했다 지폐의 총합은 항상 그의 걸음을 가뿐하게 들었다 놓았다 그런 생각 때문일까 잠시, 그의 어깨에 찍힌 건축 현장의 짐을 멘 자국이, 스러지는 궁창 속 테너 향기로 번진다 자국은 삼 남매 가족 생계를 이어가는 형태의 가장 큰 축(軸)이다 또한 그의 일터에서 형태를 바꾸어가며 땀방울을 촉촉하게 쌓아온 결과로, 그의 부인은, 다른 형태들의 세상에 대한 공평으로, 드물게는 불공평으로, 하지만, 항상 형태소의 바른 사용처럼 하루하루를 세상과 잘 조응(照應)하고 있다

 

 지금, 그의 집 앞 감나무 이파리 위론 갈대 같은 잔 미소가 머물고 잔 미소의 뼈 속은 푸른 방향성으로 젖어간다

 

계간 『애지』 2014년 여름호 발표

 

 


 

고은산 시인

2010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말이 은도금되다』(리토피아,2010)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