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원 시인 / 새벽 네 시 -G.G에게
당신의 낡고 낮은 의자, 한 여름의 털외투와 장갑 부재의 음을 찾아 약음기 페달 위에 얹은 당신의 발을 사랑해
당신이 사랑한 북극을 사랑해 기도하는 빈 손 같은, 끝도 시작도 없는 푸가 같은 얼음 벌판을 홀로 걸어가는 당신의 굽은 뒷등을
보이저호에 담긴 당신의 선율이 목성에서 토성으로, 천왕성에서 해왕성으로 흘러가는 동안
어둡고 헐렁한 옷 속에 드문 별처럼 떠 있던 아름다운 녹회색 눈동자 문패를 떼어내고, 신문을 읽지 않고, 장갑 낀 채 목욕하고 곰과 코끼리에게 말러의 곡을 들려주던
당신, 음표와 음표 사이 쉼표를 사랑하고 사랑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 썼던 당신을 나는 사랑해
단 한 줄의 시도 발표하지 않은 시인이 자신의 비밀을 담은 장밋빛 나무 상자*를 난바다로 흘려보내듯 당신을 보낸 후
고기도 야채도 먹지 않던 빈 식탁 위에 색색의 알약들을 가지런히 차린다 새벽 네 시 전화선을 타고 들려올 당신의 사라방드를 기다리며
*미셸 슈나이더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참조 1
계간 『청천문학』 2021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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