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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윤우 시인 / 삼팔광땡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0.

박윤우 시인 / 삼팔광땡

 

 

이제 달만 뜨면 되겠다

꽃패 한번 잡아 보겠다고 엉덩이 밑에 숨긴 3월 벚꽃 한 장, 방석 밑에서 만개해 있다

 

이승이 죽어야 나가는 판이라면

여기는 털려야 나가는 판이겠다

 

너무 오래 깔고 앉으면 꽃물 들 텐데, 만월 공산은 어느 산등성이에 홀패로 서 있나?

 

음복주가 몇 순배나 돌고 있는데

달은 지랄맞게 뜨지 않고 깔고 앉은 3월 벚꽃은 염치없이 애만 끓인다

 

한사코 달 없이 끝나는 파장

 

장례식장 계단을 나서니

어라!

하늘은 둥두렷한 만월 차지고 땅은 3월 벚꽃, 흐드러진 꽃비 차지다

바야흐로 이승이 삼팔광땡이다

 

『시와반시』2019, 가을호, 소시집

 

 


 

 

박윤우 시인 / 공터

 

 

들어온 골목이 나가는 골목을 찾느라 두리번거린다 안 닿는 데를 긁으려고 억지로 팔을 꺾으면 거기, 공터를 견디는 공터가 있다

 

저녁은 공터의 전성기, 새떼들이 공중을 허물어 공터 한켠에 호두나무 새장을 만들고 있다 묵은 우유팩의 묵은 날짜 같은 상한 얼굴들이 꾸역꾸역 저녁을 엎지른다

 

헐거워진 몸을 네 발에 나눠 신은 개가 느릿느릿 공터를 가로지른다 과연 공터가 공터인 건, 공터가 한 번도 공터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서다

 

공터에 왜 아이들이 없지? 그 많던 돌멩이들이 다 어디로 굴러 간 거야? 아무도 묻지 않는 그곳이라는 저녁, 빨랫줄의 빨래가 마르듯 공터가 마르면서

 

침묵하는 서랍이다가, 무표정한 유리창이다가, 필사적으로 공터가 되려는 공터가 처음 보는 이의 등처럼 어둑어둑 저문다

 

 


 

박윤우 시인

경북 문경 출생. 대구교대 졸업. 2018년 《시와 반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저 달, 발꿈치가 없다』(시와반시, 2020)가 있음. 2018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수상. 2019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