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진 시인 / 코가 없다
코가 사라지는 꿈을 꾼다
코가 녹아버린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이 도처에서 나를 보고 있다
죽음을 피하려고 영혼을 여섯 조각으로 쪼갰던 악마도 끝내 코만큼은 가질 수 없었지
절망이 가장 먼저 빼앗아 가는 것도 코지만 악취는 그림자에도 배어 있는 것
코 없는 아이가 흙 위에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그린다
잠깐 웃는다
거기에 우리들의 신이 있을까
이목구비가 자기 자리를 이탈해 버린 곳에?
코를 감싸쥐고 가까스로 잠든 밤의 악몽 속에?
날개 없는 새가 태어나고 고양이가 죽은 고양이를 파묻어주는 새벽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붉은 십자가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모두 코가 없다
(『현대시』202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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