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인 / 새와 나무
여기 바람 한 점 없는 산속에 서면 나무들은 움직임 없이 고요한데 어떤 나뭇가지 하나만 흔들린다 그것은 새가 그 위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별일 없이 살아가는 뭇사람들 속에서 오직 나만 홀로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날아와 앉았기 때문이다
새는 그 나뭇가지에 집을 짓고 나무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나만 홀로 끝없이 흔들리는 것은 당신이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까닭이다
류시화 시인 / 꽃등
누가 죽었는지 꽃집에 등이 하나 걸려 있다 꽃들이 저마다 너무 환해 등이 오히려 어둡다, 어둔 등 밑을 지나 문상객들은 죽은 자보다 더 서둘러 꽃집을 나서고 살아서는 마음의 등을 꺼뜨린 자가 죽어서 등을 켜고 말없이 누워 있다 때로는 사랑하는 순간보다 사랑이 준 상처를 생각하는 순간이 더 많아 지금은 상처마저도 등을 켜는 시간
누가 한 생애를 꽃처럼 저버렸는지 등 하나가 꽃집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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