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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마경덕 시인 / 소나무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3.

마경덕 시인 / 소나무

 

 

 내원사 계곡. 백 년 묵은 소나무 한 그루 쓰러져 있다. 가지를 찢고 뿌리를 뽑아 올린 바람은 간 곳 없고 솔이파리 누릇누릇 땡볕에 타고 있다. 소나무는 눈을 뜨고 서서히 죽어가는 제 몸을 바라본다. 물소리는 뿌리를 적시지 못한다. 저 놈의 목에 밧줄을 걸고 기중기로 끌면 일어 설 수 있을까

 

 병든 노모에게 속옷을 입힌다. 거웃이 사라져 밋밋한, 여섯 번의 열매를 맺은 그곳, 시든 꽃잎 한 장 접혀있다. 졸아든 볼기에 미끈덩 여섯 개의 보름달을 받아 안던 찰진 흔적이 남아있다. 노모가 눈으로 말한다. 내가 베어지면 그 등걸에 앉아 편히 쉬거라. 머리맡에 고요히 틀니가 놓여있다. 앙상한 두 다리 분홍양말이 곱다. 기울어 가는 소나무, 반쯤 뽑힌 뿌리에 링거를 꽂는다.

 

-2003년 현대시학 2월호

 

 


 

 

마경덕 시인 / 밤송이

 

 

수많은 호위병이 겨누는 날이 선 창(槍)을 보아라. 사력을 다하는 충실한 부하들은 빈틈없이 성을 에워쌌다. 둘러봐도 출구가 없는,

 

완벽한 저 가시의 城

 

누군가 고슴도치 갑옷을 빌려 입고

칩거 중이다

 

2003년 문학마을 / 계간 <시향> 재수록

 

 


 

 

마경덕 시인 / 성북동 가는 길

 

 

이 동네의 주인은 높은 담이다

 

세콤이나 캡스를 달고 낯선 방문자를 가려낸다. 드디어 담도 사람처럼 생각을 갖게 된 것. 생각이 늘어나자 불안이 담을 쌓고 문을 걸었다. 성(城)처럼 우뚝한, 담은 이제 벽이다. 벽은  골목길 야채를 파는 리어카와 떨이를 외치던 생선장수를 밀어내고 제 키보다 높은 지붕을 끌어내렸다. 벽뿐인 동네는 벽끼리 논다. 금을 긋고 등을 지고 건너편 벽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컹컹, 개 짖는 소리만 벽을 타고 넘는다. 담 높은 집의 힘센 개들은 오줌을 갈기며 골목을 쏘다니는 똥개처럼 담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높아서 더 불안한, 거만한 벽은 끝까지 벽만 보여준다.

 

-역사와 문학 (2004년 가을호)

 

 


 

마경덕 시인

1954년 전라남도 여수에서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신발論』이 당선되다.시집으로 『신발論』(문학의전당,2005) 『글러브 중독자』『사물의 입』이 있다. 북한강문학상 수상. 2017년 시집‘사물의 입’세종나눔도서 선정. 현재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AK아카데미, 강남문화원 시 창작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