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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맹문재 시인 / 꽃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3.

맹문재 시인 / 꽃

 

 

 지금 네가 흘리고 있는 진땀이 비누 거품처럼 꺼지고 말겠지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네지 않으련다

 

 너는 사라지는 운명에 미련을 가지고 사진이나 찍어대지 않는다 떠날 때에는 그림자까지 거두어갈 용의를 너럭바위의 표정처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절벽에 매달려 있는 조난자처럼 장맛비에 패인 언덕에서 흔들리면서도 권투 글러브를 끼는 링 위의 도전자 같은 불길을 너의 키 위로 넘긴다

 

 그 어떠한 하소연도 패악으로 간주한다고 너는 비석을 정으로 쪼듯 녹음한다 햇볕이 바뀔 때마다 네 목소리는 변색되고 말겠지만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믿고 있기에 너는 추억을 한 움큼 움켜쥔 바람처럼 진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현대시학 2004년 4월호

 

 


 

 

맹문재 시인 / 아름다운 얼굴

 

 

아주 잠깐이었지만 대천 앞바다에서

윤슬을 바라보다가 깨달은 일은

아름답게 죽는 것이었다

소란하되 소란하지 않고

황홀하되 황홀하지 않고

윤슬이 사는 생애란

눈 깜짝할 사이만큼 짧은 것이지만

그사이에 반짝이는 힘은

늙은 벌레가 되어가는 나를

번개처럼 때렸다

바람에 팔락이는 나뭇잎처럼

비늘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윤슬의 얼굴

너무 장엄해

나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대천 앞바다에서

윤슬을 바라보다가 깨달은 일은

아름답게 사는 것이었다

 

 


 

맹문재 시인

1965년 충북 단양에서 출생. 고려대 국문학과와 同 대학원에서 수학(국문학 박사). 1991년 《문학정신》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등이 있음.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