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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라라 시인 / 사랑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7.

최라라 시인 / 사랑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벗어놓은 구두를 오래 들여다보는 날이 있다

 

그것이 처음 왔던 순간을 생각해 보는 날이 있다

 

어쩌다 받은 상처를

소리 나게 못질해 주었으면

잘라 내거나 꿰매 주었으면

 

가지런한 구두를 신으면 다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날

 

아무리 광을 내고 굽을 갈아도

돌아갈 수 없는 구두의 뒤축이여,

 

구두를 닦아 햇볕 아래 놓으면

잠깐 처음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현관을 나서다 말고 구두 한 번 닦아보는 일은

착각을 불러보는 일

 

거기 있는가 처음이여,

 

웹진 『시인광장』 2021년 10월호 발표

 

 


 

최라라 시인

1969년 경주에서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1년 《시인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나는 집으로 돌아와 발을 씻는다』(천년의시작, 2017)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