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희 시인 / 내 어린 당산나무에는
마음속에 웃풍이 자랄 때 생각한다 내 어린 당산나무를
마음 속 돌부리에도 자주 넘어지는 나는 어느 계절을 걷고 있나 푸르고 무성한 이파리 다 지고 화병 속 물 시들고
실은 우리가 아픈 사람들이라는 거 너의 아픔을 알고 난 후 그렇게 시작된 사랑처럼 누구를 안다는 거 내면의 깊은 골짜기를 안다는 거 (함부로 안다고 말할 일 아니다)
먹[墨]은 한 가지 색으로 모든 형상을 표현해낸다 회색이나 갈색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는 자기 색을 다 버린 까닭이다, 라는
문장을 읽고
마른 수수껍데기 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오직 한 사람이라도 얻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자주 넘어지는 나는
이 지상의 모든 밤이 웃풍을 뚫고 마음의 구멍 속으로 들어올 때 생각한다
길을 잃어본 사람만의 심정으로 예배당에서 언 손 모으던 사람 간절함이 간절함을 모르고 기도하던 옛사람
웹진 『시인광장』 2021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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