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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문희 시인 / 내 어린 당산나무에는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7.

이문희 시인 / 내 어린 당산나무에는

 

 

마음속에 웃풍이 자랄 때 생각한다

내 어린 당산나무를

 

마음 속 돌부리에도 자주 넘어지는 나는

어느 계절을 걷고 있나

푸르고 무성한 이파리 다 지고

화병 속 물 시들고

 

실은 우리가 아픈 사람들이라는 거

너의 아픔을 알고 난 후 그렇게 시작된 사랑처럼

누구를 안다는 거

내면의 깊은 골짜기를 안다는 거

(함부로 안다고 말할 일 아니다)

 

먹[墨]은 한 가지 색으로 모든 형상을 표현해낸다 회색이나 갈색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는 자기 색을 다 버린 까닭이다, 라는

 

문장을 읽고

 

마른 수수껍데기 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오직 한 사람이라도 얻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자주 넘어지는 나는

 

이 지상의 모든 밤이

웃풍을 뚫고 마음의 구멍 속으로 들어올 때 생각한다

 

길을 잃어본 사람만의 심정으로

예배당에서 언 손 모으던 사람

간절함이 간절함을 모르고 기도하던 옛사람

 

웹진 『시인광장』 2021년 10월호 발표

 

 


 

이문희 시인

전북 전주에서 출생.  2015년 《시와 경계》신인우수작품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전라북도 산천은 노래다』(전북문화관광재단 공저, 2018)와 『맨 뒤에 오는 사람』(현대시, 2021)이 있음. 2021년 전북문화관광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현재 전북시인협회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