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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송문 시인 / 향수(鄕愁)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7.

황송문 시인 / 향수(鄕愁)

 

 

고추잠자리가 몰려오네. 하늘에 빨간 수를 놓으며 한데 어울려 날아오네.

어느고향에서 보내 오길래 저리도 빨깧게 상기되어 오는가.

저렇게 찾아왔던 그 해는, 참으로 건강한 여름이었지.

그대 꽃불같은 우리들의 강냉이밭에는 별들이 반찍이고 있었지.

잔모래로 이를 닦으시던 할아버지의 상투끝에 맴돌던 잠자리같이

강냉이 이빨을 흉내내며  단물을 빨던 나의 눈앞에

떼지어 오는 잠자리는 누가 보낸 전령인가

어디서 오는 전령이기에 노스탤저의 손을 흔들며

저리도 붉게 가슴 이리저리 맴돌며 오는가

 

 


 

 

황송문 시인 / 까치밥

 

 

우리 죽어 살아요

떨어지진 말고 죽은 듯이 살아요

꽃샘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꽃잎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떨어지지 말아요.

 

우리 곱게 곱게 익기로 해요

여름날의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내고

금싸라기 가을볕에 단맛이 스미는

그런 성숙의 연륜대로 익기로 해요.

 

우리 죽은 듯이 죽어 살아요

메주가 썩어서 장맛이 들고

떫은감도 서리맞은 뒤에 맛들듯이

우리 고난받은 뒤에 단맛을 익혀요

정겹고 꽃답게 인생을 익혀요.

 

목이 시린 하늘 드높이

홍시로 익어 지내다가

새소식 가지고 오시는 까치에게

쭈구렁바가지로 쪼아 먹히고

이듬해 새 봄에 속잎이 필 때

흙 속에 묻혔다가 싹이 나는 섭리

그렇게 물 흐르듯 殉愛하며 살아요.

 

 


 

황송문(黃松文) 시인

1941년 전북 임실 오수 출생. 전주대 국문과를 졸업. 1971년 「문학」지에 시「피뢰침」이 당선돼 등단. 시집 「목화의 계절」「메시아의 손」「조선소」「그리움이 살아서」「노을같이 바람같이」「꽃잎」「까치밥」「연변 백양나무」 소설 「사랑은 먼 내일」「달빛은 파도를 타고」 수필집「그리움의 잔 기다림의 잔」「사랑의 이름으로 바람의 이름으로」논저「문장론」「문장강화」「수필작법」선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