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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채호기 시인 / 할머니는 마당에 붉은 고추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7.

채호기 시인 / 할머니는 마당에 붉은 고추를

 

 

할머니는 마당에 붉은 고추를 넌다

베지 않은 키 큰 옥수수나무가 서 있고

누렁 빛 들판에는 풍성한 예감이 있다

먼데 산이 선명하다

형은 펌프 옆에서 양말을 빨고

하, 참 이 가을엔

햇빛의 뼛속까지 보이는구나

 

 


 

 

채호기 시인 / 북극의 얼음

 

 

내 몸은

북극의 얼음처럼 천천히 녹아내리고

녹는 무게만큼 제 부피를 늘려가는 찬 바다

깊은 밑바닥의 귀머거리 고기여

너는 모르는 구나

내 몸을 먹고 네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너는 모르는 구나

내가 조금씩 조금 씩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시집 - 슬픈 게이

 

 


 

채호기 시인

1957년 대구에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대전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 1988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슬픈 게이』(1994), 『밤의 공중전화』(1997), 『지독한 사랑』(1999), 『수련』(2002), 『손가락이 뜨겁다』(2009) 등이 있음. 제 21회 김수영문학상과 제8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 문학과지성사 편집장 및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 역임.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