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말선 시인 / 싹튼 양파들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전화를 걸었다 통화중 신호음을 들었다 나는 한번 시도한 일은 멈출 줄 몰랐다 나는 한 번 들어선 길은 돌아갈 줄 몰랐다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듣지 못한 응답이 나에게로 돌아와 꽂혔다 차창 밖으로 발개진 꽃잎들의 통화가 소란스러졌다 세상은 모두 통화중이었다 나는 나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안에 통화중 신호음이 가득 차올랐다 귓바퀴가 수백 다발의 코일을 빨아들였다 나는 나의 고백을 듣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디 간 거야 나는 나의 응답을 찾지 않았다 나는 고독해졌다 나는 팽창했다 귓속에서 입이 찢어졌다 백년은 늙은 내 입 속에서 푸르른 말들이 나를 겨냥했다.
{현대시학} 2002년 6월호
조말선 시인 / 나는 나를 맛볼 수 없었다
달칵, 불 위에 압력솥을 올렸다 달칵, 잠금장치가 분량의 나를 잠갔다
달칵, 잠금장치가 여분의 나를 풀었다 나는 안이 되었다 나는 밖이 되었다
잠긴 나와 풀린 나는 조리되었다 잠긴 나는 한없이 긴장하였다 풀린 나는 한없이 이완하였다 압력솥이 나를 조리하였다 나는 나를 두 개의 선로처럼 압축해서 달렸다 나 이외의 모든 것은 풍경이었다 꽤액 기적이 울렸다
나는 나를 만나야만 이 경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나를 맛나게 해야만 이 경주를 끝낼 수 있었다 압력솥이 들들 볶았다 경주가 극에 달했다
잠긴 나는 한없이 이완되었다 풀린 나는 한없이 긴장되었다 들들들 압력 솥이 들볶았다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밖에 있어! 나는 나를 만날 수 없었다
달칵, 압력솥을 열고 나는 나를 맛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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