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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희구 시인 / 곱창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6.

임희구 시인 / 곱창

 

 

흰눈이 팡 팡 팡 쏟아지는 밤

양철 깔대기에

능글능글한 돼지창자를 까뒤집어 놓고

썩은 똥찌꺼기를 훑어낸다

돼지똥을 만진다

라디오에선 주의 탄일을 축하 축하하고

고무통 속 찬물에 담긴 돼지창자에선

죽어 나자빠질 똥냄새가 퍼진다

모락모락 퍼진다

진동한다

손가락이 얼어터져

손가락이 똥이 될 것만 같다

찜통 속 펄 펄 펄 끓는 물이

똥 뺀 창자를 기다린다

얼어터지다 불 속으로 들어가는

기가 막힌 돼지창자의

싯누런 똥냄새 울려 퍼지는

즐거운 메리 크리스마스

 

시집 - 걸레와 찬밥 (2004년 시평사)

 

 


 

 

임희구 시인 / 삼십세

 

 

늦은 밤 라면을 끓이다가

책장의 책들을 살피다가

시집 간 옛 친구를 떠올리다가

오래전 비오던 날 뚝섬에서

옛 친구가 선물한 '삼십세'를

기억해내고 어디에 꽂혀있나

구석구석 찾아보다가

라면이 탱탱 불어터지는 밤

누가 가져갔나

삼십세가 없어졌다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시집 - 걸레와 찬밥 (2004년 시평사)

 

 


 

임희구 시인

1965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방송대 국문과 졸업. 《생각과 느낌》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시집으로 『걸레와 찬밥』(시평사, 2004)와 『소주 한 병이 공짜』(문학의 전당, 2011) 등이 있음. 2003년 제12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