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 / 빗발, 빗발
빗발, 빗발들이 걸어온다 자욱하게 공중을 점령하고 도무지 부르튼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얼마나 먼 데서 예까지 걸어오는 걸까... 천 길 허공에 제 키를 재어가며 성대제거 수술 받은 개들처럼 일제히 운다... 자폐증 누이의 꿈길을 적시며 비가 걸어온다... 봐라, 발도 없는 게 발뒤꿈치를 들고 벼랑 아래로 뛰어내려 과수원 인부의 남루를 적시고 마당 한 귀퉁이의 모과나무를 적신다... 묵은 김치로 전을 부치고 있는 물병자리 남자의 응고된 마음마저 무장해제 시키며 마침내는 울리고 간다... 저 공중으로 몰려가는 빗발, 저 쬐끄만 빗발들...
장석주 시인 / 대추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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