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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석주 시인 / 빗발, 빗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6.

장석주 시인 / 빗발, 빗발

 

 

 빗발, 빗발들이 걸어온다 자욱하게 공중을 점령하고 도무지 부르튼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얼마나 먼 데서 예까지 걸어오는 걸까... 천 길 허공에 제 키를 재어가며 성대제거 수술 받은 개들처럼 일제히 운다... 자폐증 누이의 꿈길을 적시며 비가 걸어온다... 봐라, 발도 없는 게 발뒤꿈치를 들고 벼랑 아래로 뛰어내려 과수원 인부의 남루를 적시고 마당 한 귀퉁이의 모과나무를 적신다... 묵은 김치로 전을 부치고 있는 물병자리 남자의 응고된 마음마저 무장해제 시키며 마침내는 울리고 간다... 저 공중으로 몰려가는 빗발, 저 쬐끄만 빗발들...

 

 


 

 

장석주 시인 / 대추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시인

1954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 공모를 통해 등단.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본격적인 시작 활동 시작. 같은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입선되어 평론가로도 활동 中. 저서로는 시집으로 『햇빛사냥』, 『그리운 나라』,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 『어떤 길에 관한 기억』,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크고 헐렁한 바지』 등과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 등의 평론집과 『낯선 별에서의 청춘』 등의 소설이 있음. 제1회 애지문학상(문학비평 부문). 1975 월간문학 신인상. 1976 해양문학상 수상. 2013 제11회 영랑시문학상 본상 수상. 시인세계 편집위원. 현대시 편집위원.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창작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