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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천수호 시인 / 저수지 속으로 난 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1. 27.

천수호 시인 / 저수지 속으로 난 길

 

 

 돌 하나를 던진다 수면은 깃을 퍼덕이며 비상하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저수지는 참 많은 길을 붙잡고 있다 돌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나는 같이 아프기로 한다 바닥의 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반지를 던지고 웃음과 울음을 던진다 그러나 물은 한 번 품은 것은 밀어내지 않는다 물 위의 빈 누각처럼 어둡고 위태로워져서 흘러가는 사람들 저수지는 그들의 좁은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목어가 둑 아래 구불텅한 길을 내려다보려고 몸을 출렁인다 잉어는 물 위의 빈집이 궁금하여 주둥이로 툭툭 건드린다 잉어와 목어의 눈이 잠깐 부딪친다 마주보는 두 길이 다르다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가 뒤섞여 길을 이루고 있다 떨어진 잎들이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저수지로 흘러든다 길을 끊는 저수지에 나는 다시 돌을 던진다 온몸으로 돌을 받는 저수지, 내 몸 속으로 돌이 하나 떨어진다

 

 


 

 

천수호 시인 / 뿌리

 

 

뒤집혀 바둥거리는 꽃게를

쉬이 만지진 못했다

턱턱 갈라진 배마디가

섬뜩했던 까닭은 아니다

금방이라도 아기가 나올 것 같던

만삭인 내 뱃집 기슭

갈기갈기 뻗친 뿌리가 생각났던 거다

부풀은 배에 처음 뿌리가 뻗었을 때

내 몸 옥죄는 넝쿨인 줄 알았다

아이가 자랄수록 터진 실금에서

찐득찐득한 어미냄새 흘러나왔다

뼛속까지 파고든 실뿌리가

아이를 집요하게 움켜쥐었던 것

동굴의 석순으로 굳어져

연애도 못할 어미로 만든 것

내가 쉬이 엎드리지 못 함은

이미 내 몸 어디쯤

가지가 뻗었기 때문일 게다

접고 꺾는 무르팍이 없는 가지의 마음이

하늘 쪽으로 뻗어가

열매를 위해 두 손 다 들어주는 것이다

 

<현대시학 2003년 12월호>

 

 


 

천수호 시인

1964년 경북 경산에서 출생. 대구 계명대 문에창작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박사과정.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되어 등단. 명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졸업. 시집으로 『아주 붉은현기증』(민음사, 2009)과 『우울은 허밍』(문학동네, 2014)이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현재 명지대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