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호 시인 / 저수지 속으로 난 길
돌 하나를 던진다 수면은 깃을 퍼덕이며 비상하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저수지는 참 많은 길을 붙잡고 있다 돌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나는 같이 아프기로 한다 바닥의 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반지를 던지고 웃음과 울음을 던진다 그러나 물은 한 번 품은 것은 밀어내지 않는다 물 위의 빈 누각처럼 어둡고 위태로워져서 흘러가는 사람들 저수지는 그들의 좁은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목어가 둑 아래 구불텅한 길을 내려다보려고 몸을 출렁인다 잉어는 물 위의 빈집이 궁금하여 주둥이로 툭툭 건드린다 잉어와 목어의 눈이 잠깐 부딪친다 마주보는 두 길이 다르다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가 뒤섞여 길을 이루고 있다 떨어진 잎들이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저수지로 흘러든다 길을 끊는 저수지에 나는 다시 돌을 던진다 온몸으로 돌을 받는 저수지, 내 몸 속으로 돌이 하나 떨어진다
천수호 시인 / 뿌리
뒤집혀 바둥거리는 꽃게를 쉬이 만지진 못했다 턱턱 갈라진 배마디가 섬뜩했던 까닭은 아니다 금방이라도 아기가 나올 것 같던 만삭인 내 뱃집 기슭 갈기갈기 뻗친 뿌리가 생각났던 거다 부풀은 배에 처음 뿌리가 뻗었을 때 내 몸 옥죄는 넝쿨인 줄 알았다 아이가 자랄수록 터진 실금에서 찐득찐득한 어미냄새 흘러나왔다 뼛속까지 파고든 실뿌리가 아이를 집요하게 움켜쥐었던 것 동굴의 석순으로 굳어져 연애도 못할 어미로 만든 것 내가 쉬이 엎드리지 못 함은 이미 내 몸 어디쯤 가지가 뻗었기 때문일 게다 접고 꺾는 무르팍이 없는 가지의 마음이 하늘 쪽으로 뻗어가 열매를 위해 두 손 다 들어주는 것이다
<현대시학 200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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