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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곽문연 시인 / 시비(詩碑)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2. 15.

곽문연 시인 / 시비(詩碑)

 

 

안면도 바닷가 솔숲 시비(詩碑)* 하나

비릿한 갯냄새가 비석을 감돌고

솔가지 사이를 비집고 내려온 낮달이 한가롭게

시비를 읽고 있다

 

몇 줄로 요약된 시인의 생애

밧줄을 잡고 바다를 건너던 시인이

마지막 호주머니에 남겨둔 150원,

돌아오려고 남겨둔 뱃삯이었을까

 

내 호주머니에 얼마를 넣어야

저 긴 물길을 잡을 것인가, 저 세찬 불길을 잡을 것인가

 

파도소리 한상 차려놓고

시인은 아직도 시를 쓰고 있다

 

*채광석의 시비

 

 


 

 

곽문연 시인 / 눈길

 

 

밤새 내린 눈이 발목까지 차오른다

잠을 덜 깬 눈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산책길

한걸음 앞선 작은 들새들의 날갯짓에

숲에 매달린 축복이 흩날린다

 

풍경에 취해 걷다 문득, 뒤돌아보면

지그재그 뒤따라온 발자국들

순백의 숲, 백지에 발로 쓴 글씨들 드러난 상처가 깊다

 

산허리에 쌓인 눈이 가로막아

되짚어 내려오는 길,

이런 날은 산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단단한 묵상 앞에

눈밭에 기록한 글씨는 지워지고

들새들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계간 『시에』 2013년 봄호

 

 


 

 

곽문연 시인 / 쥐

 

 

저녁 TV뉴스

사람과 쥐의 유전자지도를 따라가 보았더니

팔할이 한자리에서 만나더라는 것이다

 

툭하면

쥐새끼만도 못한 놈들!

쥐새끼 같은 놈들!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시던

중학교 시절 역사 선생님이 생각난다

 

지금 어디쯤 살아 계셔 저 뉴스 들으신다면

옳거니! 파안대소하지 않으실까

 

쥐새끼가 쥐새끼 아니라고

찍찍거려본들

이할 밖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쥐새끼들이

TV에서, 거리에서 우글거린다

 

쥐새끼와 다른 이할을 우쭐대는 사람들

사람과 쥐를 한 저울에 올릴 수 있느냐며

내 뺨때기를 한번 후려칠 터이지만

 

지금 새앙쥐 한 마리가 창 밖을 보며

쥐꼬리만한 상상력으로 시를 쓰고있다

 

 


 

곽문연 시인

충북 영동에서 출생. 춘천대학 상학과 졸업. 중대예술대학원 문창과 수료. 2003년《문학마을》로 등단. 시집으로 『단단한 침묵』이 있음. 한국시인협회 회원. <다층사람들> 편집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