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리 시인 / 난반사
나는 국을 끓이는 사람 국자를 휘휘 저어 점괘를 키운다
나는 냄비 속에서 끓고 라디오에선 달의 과거가 흘러넘치는데
발목 잘린 달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울고 있다 회전 방향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생니가 뽑힐 것처럼 국물이 끓어오르고 풀리지 않는 어제가 국물 위를 떠다닌다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회오리치는 점괘 회오리를 멈춘 순간 나도 따라서 멈칫
냄비 안에 든 생태처럼 고전을 면치 못할 운세
비등점이란 벽에 부딪히면 불부터 낮추고 괄호 밖 계절이 괄호 안이 될 때까지 부은 눈가를 비비며 간을 맞춘다
뜨거움으로 회오리치는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해 냄비뚜껑이 들썩인다
넘치면 넘치는 대로 냄비는 아귀를 맞춘다
상처가 거의 아물어간다
김사리 시인 / 내일을 연주해 주세요
로드리고, 발밑이 녹기 시작하면 우린 어디로 떠나야 할까요
옹알이처럼 부푸는 풍선을 불다가 공중을 선회하는 계절을 놓쳐버렸어요
봄은 어디 있나요 연어 떼를 따라 강을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로드리고, 후박나무 이파리에 투명한 유리알이 맺히는데 풍선을 찾는 음악이 자꾸 들려와요
내일은 또 무엇을 터뜨려야 할까요
스스로 부풀리기를 좋아하는 것들은 깡그리 잊어버려야 해요 딜리트 키를 누르면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기타가 벼랑을 두드릴 때면 음악이 폭죽처럼 아니, 팝콘처럼 쏟아지고
어제라는 골짜기는 줄을 타고 내려가는 거미 아니, 당신이라는 이름의 계곡
로드리고, 지난 계절이 메아리처럼 들려오나요
풍선이 터지는 오늘 대신 가장 가까운 미래의 코드를 짚어주세요
해가 뜨고 있는데,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지금은 어떤 계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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