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화 시인 / 혀를 위한 변명
입 속에서 냉이 꽃말이 혀끝을 맴도는 봄
그는 그저께 눈밭을 지나갔고, 발자국마다 흰 꽃이 피고 길들여지지 않은 새는 주변을 맴돌며 노래했다
당신에게 나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나는 봄이 너무 가까이 있어 새의 하얀 리듬을 해체할 수 없다 검은 혀를 내밀며 끝이라고 말하던 짐슴처럼
나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당신을 찾아 없는 혀를 굴려본다 꽃과 새의 주인이며 동시에 내 혀의 주인이던 당신은 너무 멀리 있다
잃어버린 얼굴이 가득한 들판에 냉이꽃이 핀다
장미꽃 모자를 쓰고 백과사전 뒤에 있을 꽃말은 지고 길들여지지 않은 새가 밤으로 떨어질 때 봄이 간다
-권이화 시집『어둠을 밀면서 오래달리기』
권이화 시인 / 눈보라 치는 생의 자정 너머
노란 구두를 벗고 달의 뒷면으로 간 사람의 영혼처럼
생강나무꽃등을 켜는 봄밤이 환하면 눈보라 치는 생의 자정 너머로 뜨는 달 무너졌을 바람의 뒷모습이 긴 그림자를 만든다
해가 지지 않는 남쪽은 어느 발밑에 있을까
구릉을 건너가는 새의 발목은 가늘어서 구두를 벗어도 아물지 못하는 물집 발목을 잡는 신발의 기억에 매달리다
개천의 물오리 긴 바닥을 차올라 푸드득거릴 때면 보내야 하는 이름을 기억하고 호명하는 사이에서 시작되는 푸른 얼굴
다리를 쭉 뻗은 달의 도상에도 붉은 흉터마다 봄의 노란 날개깃이 돋고 있는지
남은 새의 발목으로 떨어지는 달빛에는 수수께끼가 풀어가는 줄무늬 노랗고
진동하는 공기 속으로 한걸음씩 발을 떼는 그대에게도 생의 정오를 내려가는 달의 뒷면이 보인다
ㅡ『시인시대』(2020,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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