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철 시인 / 붕어빵 아저씨
붕어빵 아저씨가 붕어빵을 뒤집고 있어요. 오,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고소한 혁명! 세상도 뒤집어야 골고루 잘 익고 완성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뒤집을 땐 아저씨처럼 번개같이 뒤집어야 해요.
보셔요! 미의 여신이 모나리자를 뒤집고, 수련은 미의 여신을 뒤집고, 해바라기가 수련을 뒤집고, 아비뇽의 처녀들은 해바라기를 뒤집고,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뒤집고 브릴로 상자가 샘을 뒤집지 않았어요? 그 때마다 새로운 꽃들이 피고 사람들이 뒤집어졌지 않아요? 그리고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에 게 뒤집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뒤집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베이컨에게 뒤집히고, 베이컨은 데카르트에게 뒤집히고, 데카르는 칸트에게, 칸트는마르크스에게마르크스는베르그송에게베르그송은하이데거에게하이데거는데리다에게 뒤집혔지요. 헌데, 그들은 좀 멍청한 사람들 같아요. 뒤집어 봐야 자기도 또 뒤집어질 걸 모르나 봐요. 그리고
이성계가 고려를 뒤집고, 학생과 시민들이 이승만을 뒤집고, 박정희가 제2공화국을 뒤집고, 레닌이 제정러시아를 뒤집고, 모택동이 장개석을 뒤집고 프랑스 시민들이 루이 13세를 뒤집었잖아요? 이분들도 좀 그렀네요. 그런데 붕어빵은 뒤집으면 완성이 되는데 이분들의 뒤집기는 끝이 없네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뒤집어지고, 뒤집으면 새 세상이 열리는 군요. 그런데 뒤집기를 뒤집으면 완성이 되는지, 뒤집기의 뒤집기는 끊임없이 이어지는지를 잘 모르겠네요. 나도 한번 뒤집어 볼까요? 아, 내가 뒤집을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군요.
문득 돌아보니 지구가 몸을 뒤집고 있어요. 그리고 골목에서 봄이 겨울을 뒤집고 있어요. 아아 아 ~
강준철 시인 / 동백꽃
립스틱 짙게 바르고 내 앞에서 어쩌자는 거냐? 향수를 너무 많이 뿌렸잖아! 그 살인적인 미소는 또 뭐냐? 저리가! 너무 뜨거워 만 리 밖 강철문이 다 녹아내리고 있어 치마를 좀 내려! 그렇게 웃고 있으니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나? 너의 품 속, 아마 거기가 천국이겠지?
가까이 오지 마! 내가 두려워.
강준철 시집 『나도 한 번 뒤집어 볼까요?』, 도서출판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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