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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오현주 시인 / 아름다운 노년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9.

오현주 시인 / 아름다운 노년

 

 

창밖에 서리가 내리는날

한송이 꽃이 피었네

 

향기 가득한 꽃이 피었네

 

칠십년 기나긴 세월이

고이 간직한 씨앗이 싹을 텃네

 

꽃샘부는  날에는

다칠세라 마음졸였고

 

찌는 더위에는 썩을 세라

한숨 쉬었네

 

맑은 바람 부는 날에

아무도 모르게 살며시 고개 내 밀드니

 

이제 찬 바람 부는 초 겨울에

아름다운 꽃을 피었네

 

 


 

 

오현주 시인 / 유리창

 

 

거리가 내다보이는

투명한 유리창 앞에 서면

나는 삼류 연출가가 된다

 

오고가는 사람들

눈빛을 보고

몸짓을 보고

벙긋거리는 입술을 본다

 

은밀해서 즐거운 일

허락 없이

그들의 입술을 훔쳐내고선

나만의 대본으로 더빙을 한다

분명 최고의 명배우들이다

 

영사기처럼 돌아가는 상상

유리창은

도박적인 스크린이다.

 

 


 

 

오현주 시인 / 화장(化粧)

 

 

여자의 화장은 남자를 위함이 아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파

맨살 위에 그리는 자화상이다

 

긴 속눈썹 드리운 그늘 아래

그윽하니 젖은 눈동자

검은 눈물 흐르면

두 뺨 얼룩질 테니

목젖 깊숙이 슬픔 묻고

 

외로움이 사치스러운 날에는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는 입술

찻잔에 도도함을 찍어놓는다

 

여자의 화장은 스스로를 사랑하고파

나르시스의 강둑에서

수선화로 피어나길 소망하는 것이다.

 

 


 

오현주 시인 & 칼럼리스트

월간문학공간 시부분 등단. 시와글벗문학회 동인. 선진문학작가협회 회원. 선진문학(선진문협)소록도 시화전 출품. 전남방송 문화사회부 3부장. 전남방송 칼럼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