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령 시인 / 슬픔의 가속
나무들은 전력질주로 도망가고 구름은 집요하게 따라왔네. 울걸 그랬어! 와디의 습관성 독백이 방울방울 차창에 맺히네. 오래된 고독이 자유낙하 하는 화답 행 버스는 화답(和答)의 관성을 거부하네. 차라리 좀 더 확실하게 무너져 내릴걸 그랬어! 맹목적 다짐들을 바짝 당겨와 내리는 폭우는 이곳의 흔하디흔한 풍경이네. 수시로 범람하는 와디, 그녀의 웃음은 근본 압축된 슬픔이네. 어디 한마디 말 건 낼 곳 없이 이별의 무게는 추억의 량에 비례하기에 와디, 그녀는 한동안 좀 더 젖을 요량이네. 몇 정거장을 놓친 악착보살 같은 와디의 눈물이 간벌된 가로수 길에 우두두둑 박히네. 예보도 없이 내리는 폭우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네. 반복된 우기는 건기를 부르네.
월간 『우리시』 2021년 2월호 발표
이령 시인 / 하랑, 새떼에 들다
새 둥지 같은 마을에 고샅까지 촘촘하게 젖는 산돌림이 막 지나간다 이참에 그렁그렁 묻어둔 그리움 갈피 열어 한 나절만 따라 젖겠다고 들길에 섰다 어느새 표정을 쟁일 줄 아는 나이 빗줄기 사이사이 푹 젖고 나서야 비로소 포말 되는 이름들 내남없이 시나브로 음화에 젖어 심금을 보듬어 세월이라는 수위를 높였겠지 더러는 망각이라는 골조로 가까스로 견뎌온 생 불쑥이는 통점인 냥 돌리질치며 심중을 헤아리듯 샛강은 또 저리 푸른 울음을 토해내는가 슬픔의 배태가 어쩌면 저리도 처연했던가? 들머리 돌아들자 해가 앞서 간다 젖고 개이고 산 빛은 더 깊어졌는지 어제의 붉음이 오늘의 녹음을 이고 장마가 훑고 간 자리마다 다 채록할 수 없는 비밀들로 수런거릴 때 물가죽 북을 튕기며 날아오르는 물새들, 지나간 것들의 변명을 밀어낸 그 공멸의 파문을 저물도록 지켜보고 있다
계간 『문학秀』 2021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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