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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령 시인 / 슬픔의 가속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9.

이령 시인 / 슬픔의 가속

 

 

 나무들은 전력질주로 도망가고 구름은 집요하게 따라왔네. 울걸 그랬어! 와디의 습관성 독백이 방울방울 차창에 맺히네. 오래된 고독이 자유낙하 하는 화답 행 버스는 화답(和答)의 관성을 거부하네. 차라리 좀 더 확실하게 무너져 내릴걸 그랬어! 맹목적 다짐들을 바짝 당겨와 내리는 폭우는 이곳의 흔하디흔한 풍경이네. 수시로 범람하는 와디, 그녀의 웃음은 근본 압축된 슬픔이네. 어디 한마디 말 건 낼 곳 없이 이별의 무게는 추억의 량에 비례하기에 와디, 그녀는 한동안 좀 더 젖을 요량이네. 몇 정거장을 놓친 악착보살 같은 와디의 눈물이 간벌된 가로수 길에 우두두둑 박히네. 예보도 없이 내리는 폭우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네. 반복된 우기는 건기를 부르네.

 

월간 『우리시』 2021년 2월호 발표

 

 


 

 

이령 시인 / 하랑, 새떼에 들다

 

 

새 둥지 같은 마을에

고샅까지 촘촘하게 젖는 산돌림이 막 지나간다

이참에 그렁그렁 묻어둔 그리움 갈피 열어

한 나절만 따라 젖겠다고 들길에 섰다

어느새 표정을 쟁일 줄 아는 나이

빗줄기 사이사이 푹 젖고 나서야

비로소 포말 되는 이름들

내남없이 시나브로 음화에 젖어

심금을 보듬어 세월이라는 수위를 높였겠지

더러는 망각이라는 골조로 가까스로 견뎌온 생

불쑥이는 통점인 냥 돌리질치며

심중을 헤아리듯 샛강은 또 저리 푸른 울음을 토해내는가

슬픔의 배태가 어쩌면 저리도 처연했던가?

들머리 돌아들자 해가 앞서 간다

젖고 개이고 산 빛은 더 깊어졌는지

어제의 붉음이 오늘의 녹음을 이고

장마가 훑고 간 자리마다

다 채록할 수 없는 비밀들로 수런거릴 때

물가죽 북을 튕기며 날아오르는 물새들,

지나간 것들의 변명을 밀어낸

그 공멸의 파문을 저물도록 지켜보고 있다

 

계간 『문학秀』 2021년 가을호 발표

 

 


 

이령 시인

경북 경주에서 출생. 동국대 법정대학원 졸업. 2013년 《시사사》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2015년 한중작가 공동시집 『망각을 거부하며』출간. 시집으로 『시인하다』와 『삼국유사대서사시ㅡ사랑편』 그리고 기타 저서로는 『Beautiful in Gyeongju-문두루비법을 찾아서』가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 문학동인Volume 고문, 동리목월기념사업회 이사, 경북체육회 인권상담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