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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관영 시인 / 자화상(自畵像)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9.

윤관영 시인 / 자화상(自畵像)

 

 

안다 다소 비겁하다는 거

엎어 버리고 싶은 군대였지만 눌러앉힐까 봐

고분고분했다 다소가 아니다

투사인 양 살다가

애저녁에 산골로 도망 왔다, 와서는

(사는 건 뒷전이고) 허무를 이기려 발버둥이다

비굴까진 가지 말아야 하는데

이기적으로 변했다 종종

밤에는 혼자 投網, 던지러 간다

(망은 흐르는 수면을 오린다)

별은 멀어 바위에 누워 길게 보아도 멀고 멀어

별빛 비치는 개울에 나 간다 별빛처럼 파닥이는

피라미를 보면서 비겁하게 배를 딴다

(허무를 들어올린 투망은 처박는다)

밤 산이 무섭고 밤의 바람 그늘이 무섭다

고요가 무섭고 새벽 일이 무섭다

비겁하게 책 속으로, 인터넷 속으로 도망간다

고요는 거울 같아서 비겁도

비굴까지도 낱낱하다

달아나서는 못 이기는 고요, 이길 수 없는 고요

비겁은 무서운 착한 마음이다

허무는 이겨도 허무하다 온이로 이기적이어야

거울에 얼굴을 들이댈 수 있다, 고기야말로

제 무게에 맞는 부레를 가졌다

 

 


 

 

윤관영 시인 / 말, 경마장 가다

 

 

 말은 말 많은 자를 싫어한다 히히히 힝 말 잔치에서는 구석의 말 없는 놈이 무서운 법 말잔치 히히히 휙 백마 탄 왕자는 얼룩말을 흘겨본다 말 부리는 놈은 땀나고 말 재주 있는 놈은 떨어지게 마련, 말의 교접은 순식간에 공표된다 말 타면 달리고 싶고 말 꼬리 잡는 놈은 뒷발에 걷어차인다 포식자가 덮치기 전에 순식간에 끝나야 하는 말의 교접 히히힝 촌철살인이 예서 나왔다 대물을 받아들이려 제 생식기를 국화빵처럼 옴짝거리는 암말, 말 씀 준비와 말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그런 것이다 잔치랍시고 말 허리 자르는 놈은 잘리고 말 머리 돌리는 놈은 제 머리를 돌려 가야 한다 순식간의 흘레라 흐흐흐 그 말을 우습게보지 마시라 안반짝 같은 엉덩이 흔드는 여진이야말로 오래 가는 법, 말 더듬는 놈은 기중 어여쁜 놈 말 바꾸는 놈이야말로 잔치에 아예 참예 못한다 말 장난은 어불성설 초원을 지배하는 말의 눈빛을 보라 아랫배에 숨겨진 겁나는 한 방의 銃身, 말은 재갈 물린 말이 무서운 말이다

 

 


 

 

윤관영 시인 / 피뢰주 서다

 

 

 종당에 뜰에 피뢰침을 세웠다 공사장 연장으로는 이름도 이쁜 삽뽀드(support)로 기둥을 세우고 삽뽀드 하면 해외 여행으로는 삿포로로 가고 싶은 그 안에 굵은 전선을 넣고 끝에 철근을 매고 그 위에 알통 같은 소나무 가지로 솟대를 깎아 피뢰침은 섰다 삽뽀드 속에는 삽으로 눈 치우는 듯한 기운이 들어있어 모든 벼락은 이리로 오겠지 벼락은 또 눈이 생기는 그 지점에서 같이 출발해 그렇게 일순간에 빛으로 오는 것 삽뽀드 삽뽀드는 떠받치는 것 마냥 끌어안고 싶은 것 벼락 같은 우주의 기운은 다 이리로 오겠지 비만 오면 비 맞은 뜰처럼 좋아서 벼락의 기운이란 기운은 다 이리로 올 듯해 좋아서

 

 꿈은 솟대로 서서 벼락 맞아 죽을 듯이

 

 


 

윤관영 시인

1961년 충북 보은 출생. 1996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나는 직립이다」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으로『어쩌다, 내가 예쁜』(황금알, 2008)이 있음. 현재 『미네르바』 자문위원. 2009년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현재 망원동에서 아들과 함께 식당(父子부대찌개)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