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봄 시인 / 백색-이별방정식
당신을 추억해야 한다면 난 여행을 떠날 거야 우기 지난 모로코에 가서 와디를 따라 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 넘을 거야
백조 한 마리가 우물로 내려오면 나는 슬픔을 참느라 길게 늘어난 목에 오래 입을 맞추어야지
춤을 출거야, 태양의 흑점 한 가운데서 가볍게 뛰며 경쾌한 왈츠를 추어야지 모로코 하고 읊조릴 때 흐르는 음률을 낮은음자리표로 붉은 카펫에 그려 넣을 거야
카사블랑카에 들르면 집을 잃은 군인과 술집 여가수의 이야기가 비처럼 흐르는 영화를 볼 거야 키스신 뒤쪽으로 폭죽이 터질 거야 잘 익은 포도주는 거리에 흥건히 엎질러질 거야 아, 나는 철없이 취할 거야
그곳에 가면 푸른 수염을 기른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보다 먼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당신은 이미 늙어 있을 거야 오래 전 당신의 외투 주머니에서 끄집어낸 낙타의 발자국들이 푸르게 피고 있을지도
임봄 시인 / 백색의 나라에는 이끼가 자라지 않는다
종이로 수많은 별들을 오려 하얀 문풍지마다 붙이던 여자
한 주먹 분량의 행복한 기억으로 분홍색 꽃무늬 그림을 그리던 여자
리어카에 배추와 아기와 햇살을 싣고 바람을 가르며 장터로 가던 여자
검은 멍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돈을 세던 여자
사과 속살이 마르는 동안 억새 소리를 내며 잠깐씩 울던 여자
그 여자의 울음을 꼭 빼닮은 내 늑골 아래 잠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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