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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주용일 시인 / 욕을 하고 싶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0.

주용일 시인 / 욕을 하고 싶다

 

 

아이가 욕을 한다

에이 씨발놈아 개똥꼬야

아이 몸에서 욕이 새처럼 방생된다

욕이 욕답기 위해서는 소리와 함께

마음도 저렇게 몸을 빠져나가야 하리라

너무 자연스러워

나도 따라 중얼거려본다

소리가 목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이들의 맑은 눈빛은

제 몸 속의 욕을 날마다 저리

 

허공으로 날려보내기 때문은 아닐까

한세상 살아오며

내 속에 쌓인 무수한 욕

개 같은, 엿 같은

가래침처럼 칵 뱉어버리고 싶은 것들을

나는 방생하지 못하고 살았다

욕으로 터져 나오지 못한 소리,

불순한 것들로 꽉찬

내 몸은 끈끈한 욕덩어리다

 

2003년『시와 정신』 여름호

 

 


 

 

주용일 시인 / 추억의 삼천리 자전거포

 

 

 면 소재지 중학교를 통학하며 바람 빠진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거나 체인에 기름을 얻어 치던 곳, 중학교 못 간 석이는 그곳에서 세수대야에 주부를 담그고 빵꾸를 때웠다, 기계충의 석이 머리 위로 신작로 지나가던 삼륜차가 하얀 먼지를 씌워놓고 사라지던 곳, 석이에게 미안해 금빛으로 빛나는 중학모자를 벗고 까까머리로 지나던 곳, 몇 대의 중고 자전거가 늘어서 있고 기름때 묻은 헝겊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던 곳, 장날 석이와 함께 주먹만 한 찐빵을 몰래 훔쳐 먹던 시장 옆, 이제는 석이가 주인이 되어 지나는 나를 불러 세워 텅 빈 위장에 막걸리 바람을 빵빵하게 넣어주는, 추억의 삼천리 자전거포

 

 


 

 

주용일 시인 / 강

 

 

돌을 던져보면 안다, 강물의 깊이

켜켜이 쌓인 강바닥의 뜨거운 울림이

물 표면 빠져나와 가슴으로 쏜살같이 달려오며

오래도록 우리 몸을 물 동그라미로 전율케 함을,

돌은 물살에 미끄러지며 반짝 튀어 오르다

제 무게로 흔들리며 강바닥 닿아

무겁게 퇴적된 세월을 낮은 소리로 퍼 올린다

한 번도 수면 위로 솟아오르지 못했던

층층의 시간들이 웅얼웅얼 떠오른다

풍덩하며 울리는 낯선 시간의 파장,

강은 세월이 남긴 흔적들을 낱낱이 품어

그 소리를 바닥 깊숙이 숨기고 있다

누군가 아프게 돌 던져주지 않으면

질긴 시간과 시간의 사슬 매듭 풀어

제 가슴의 소리 들려줄 수 없다

던져진 돌의 상처 기쁘게 보듬으며

강은 돌과 함께 신생의 세월을 받아들여

천천히 제 가슴 한 켠에 쌓아간다

 

 


 

주용일 시인

1964년 충북 영동 출생. 한남대 국문학과 졸업.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2003년 시집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듯하다> <내 마음에 별들이 뜨지 않은 날들이 참 오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