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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광희 시인 / 폭포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1.

김광희 시인 / 폭포

 

 

그 여자 볼일 한번

시원하게 보고 있다

 

그 샘이 얼마나 커

온 들판을 다 적시나

 

식솔들 수만 명 쯤은

거뜬하게 거두겠다

 

 


 

 

김광희 시인 / 입춘

 

 

흰 옷자락 겨울노인 월정교 건너간다

툇마루 고양이가 매화빛 하품물면

계림엔 바람정령이 연둣빛 주문 왼다

 

쪽 볕에 몸 푼 월지 수련궁에 불을 밝혀

겨우내 묵혀두었던 마음 속 묵정밭에

녹이 슨 쟁기를 닦아 복사꽃밭 일군다

 

 


 

 

김광희 시인 / 분황사 할머니

 

 

할머니, 재齋 지낸 분황사에

어여쁜 할머니꽃으로 부활했다

큼지막한 돌부처 옆에 엎드려

쉿, 할머니 집에 가요

저리 일찍 그 쪽으로 들어간 불두화며 상사화

경 읽느라 바뜨던 귀뚜라미 숨죽인다

발아래 수련중인 질경이가 이슬땀 흘린다

한 뻠 너머 팠는데 경전 같이 야문

땅덩어리 할머닐 잡고 놓지 않는다.

육십 년 넘게 할머니 붙잡았던 바탕골 같다

놔 줘요 제발, 잘 모실게요

살기 힘든 곳일 수록 뿌리는 더 깊이 내린다고,

깊이 판다 수렁 같은 내 속을 판다

할머니, 발 좀 풀어요

아무도 안 본다고, 안 본다고 허둥대는 날 본다

돌부처가 지낸 내 엉덩일 서늘하게 한다

풍경이 군지렁 군지렁 주억거린다

부드럽게 간지럽히는 솜털피부! 할머닐

검은 비닐봉지로 눈 가려 나오는데

뒤 당겨 돌아본다 시침 뚝 떼는 모전탑 깊게

굽어보는 어둠, 별들 총총 따라 온다 서둘러 닫은

현관문 식구들 단내 환하다

 

 


 

김광희 시인

경북 경주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06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16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3년 <경주문학>상 수상. 2015년 오누이시조 신인상 수상. 시집으로 『발뒤꿈치도 들어 올리면 날개가 된다』가 있음. 경주문협회원, 시in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