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향 시인 / 달콤한 커피향의 유혹
커피는 추억이다. 빛바랜 흑백 사진이다. 커피향이 짙게 번지는 어수선한 퇴근길가에서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너 혹시 누구 아니니? 가만히 보니 낯익은 모습의 얼굴이다. 여고 졸업하고 거의 이십여 년 만에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이다. 주변에 그렇게 흔한 커피숍도 많았건만,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반갑고 기쁜 그 만남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 웃고 떠들고 시간 반이 넘도록 이야기하던 우리는 무엇이 또 그리 바쁜지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녀가 타고 떠난 버스 꽁무니 뒤로 뽀얗게 일어서는 현실의 시간-. 애써 밀어내는 퇴근길, 자꾸만 낭랑 십팔 세의 얼굴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어 아직 이른 낙엽을 집어 든다. 낙엽에서도 묻어나는 지난날의 추억은 달콤한 커피향을 유혹한다. 가을밤은 깊어만 가는데…….
박소향 시인 / 블랙커피
아무 것도 섞지 말기 아무 것도 넣지 말기 초승달이 걸러낸 저녁처럼 외로울지라도 버거운 하루를 밟고 가는 내 그림자가 안쓰러울지라도
달콤한 향기에 넘어가지 않기 고소한 유혹에 무너지지 않기 길들여진 입맛에 현혹되지 않기
하지만 비가 내리는 날은 안 되지 바다가 생각나는 울적한 날은 안 되지 약속도 없는 마지막 주말 고독이 깊어져 그리운 것들이 몰려올 때는 더욱 안 되지
깔끔하고 싶지만 도도하고 싶지만 나이테가 늘어갈수록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약해지는 그저 블랙만으로는 양이 안 차는 허전한 새벽처럼 유혹이 시작되지
아무 것도 섞지 않은 아무 것도 넣지 않은 한 가지 색으로만 사는 일 쉽지만 쉽지 않은 그래서 커피를 마시며 하는 말은 믿지 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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